그보다 괴로운 건 채변검사 결과가 나온 뒤이다. 한 반에서 절반 이상이 기생충이 있었는데 그런 아이들은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구충제를 꿀꺽 삼켜야 했다. 하지만 대다수가 기생충과 머릿니가 있는 시절이어서 부끄럽긴 해도 고개를 못 들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기생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는 달라졌다. 인분 대신 화학비료를 사용하면서 기생충은 자취를 감추었고, 기생충은 이제 가난보다는 불결과 비위생의 상징이 되었다. 이번에 중국산 김치에서 나온 것은 기생충 성충이 아니라 단순한 수정란이었을 뿐인데도 온 나라가 ‘패닉’에 빠진 것은 예전의 그런 집단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생충 알 검출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중국대사관 측의 언론보도 보류 요청을 물리치고 이를 공개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식품안전 문제를 외교적 이해관계에 따라 축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의 책임을 중국에만 떠넘기며 중국산 제품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이미지 추락과 수출길 악화를 우려하는 중국 정부의 항의 때문만이 아니다.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 주변에 몰려있는 수백 개 김치공장의 주인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한국의 영세업자들이 원가에도 못 미치는 싼 가격에 주문을 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김치공장들이 이 단가에 맞추기 때문에 불량 김치 사태는 언젠가는 터질 일이 터진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산 김치는 일본에도 대량 수출되지만 기생충 알이나 납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생산자는 제값을 주고 전용농장에 계약재배를 요구하고 전문가가 수시로 농약 비료 등을 점검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도 제값을 주고 사먹되 문제가 있는 식품은 가차 없이 고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김치의 문제가 아니고, 중국산의 문제도 아니다. 혹자는 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되지 않은 사실을 두고 국내 농가가 농약을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라는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사실 인분 비료를 사용하는 유기농 제품에서 기생충 알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곳이 중국이건 뉴질랜드건 한국이건 마찬가지다.
이번 기생충 알 검출 파문도 허술한 검역체계와 생산자의 비양심적 태도, 소비자의 과민반응에서 비롯된 것이다. 7월 중국산 민물고기에서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됐다며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그 시점에도 우리나라 일부 양식업자들은 말라카이트그린을 쓰고 있었다. 소비자도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체 유해성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제조업자와 정부에 대한 비난을 퍼붓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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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시대에 중요한 것은 제품의 ‘국적’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점을 이번 사건에서도 예외 없이 보여 주고 있다.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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