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6월 지방선거와 8월 재선거에서 압승했지만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만들어 낸 정치적 역동성에 휩쓸려 결국 대선에서 패배했다. 2000년 12월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이 동교동계 퇴진을 요구하며 주도한 ‘정풍운동’ 때도 한나라당은 지금과 똑같은 걱정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당시 최고위원이 당권-대권 분리를 요구하다가 통하지 않자 탈당까지 했지만 ‘이회창 대세론’에 안주했던 당 지도부는 개혁 요구를 외면했다. 그리고 이런 ‘수구(守舊)’를 대선 표심이 외면했다.
한나라당 내 소장파 의원들이 어제 당 개혁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4년 전 상황의 재판(再版)이다. 문제는 여권의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이익에 안주하는 한나라당의 ‘웰빙당(黨) 체질’에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그제 한나라당은 안풍 사건 무죄 판결을 계기로 병풍-총풍 등이 ‘공작정치’에 따른 조작이었다고 공세를 폈다. 하지만 여권이 공작정치로 민심을 도둑질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 자체가 야당의 ‘자력(自力) 득점 요인’은 되지 못한다. 한나라당은 민생 경제와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는 비전과 구체적 대안으로 정치 동력을 스스로 만들고, 다수 국민의 마음을 붙잡아야 희망이 있다. 현 정권의 뒤를 밟는 ‘2급 포퓰리즘 정치’로는 1등이 될 수 없다.
다수 국민이 아무리 현 정권에 실망했더라도 그것이 곧 한나라당 집권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 한나라당이 아니면 안 되는가’를 보여 주지 못하는 제1야당의 존재는 국민에게도 비극이다. 오죽하면 여권 핵심 인사들이 “다음 대선은 자신 있다”고 지금도 호언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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