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당국자들의 고민은 한일의 주요 현안이 양국민의 자존심과 얽혀 있어 외교적으로 풀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 3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독도 문제 등 일본의 잘못을 거론하며 “이번에는 반드시 뿌리 뽑도록 하겠다”고 결연한 대응 방침을 밝혔다.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일 외교전쟁 불사를 선언한 셈이었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달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게다가 고이즈미 총리가 강경보수 성향의 인사들을 전면에 포진시키는 개각을 단행함에 따라 한일 간의 외교적 한랭전선이 더욱 두터워질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이 7일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조금 시간이 있으니까…”라며 “계속 검토 중”이라고 모호한 입장을 기자들에게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도 일본에 대해 “필수불가결한 외교적 교섭과 선택적 외교 행위를 분리 대응한다”는 원칙론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내부적으로는 한일 정상회담의 개최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APEC 의장국으로서 일본을 홀대할 수 없고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진전을 위해서도 일본과 협력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 당국자는 “북한 핵 폐기 후 보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은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며 “차라리 언론이 먼저 앞장서 정리해 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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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과 실리의 틈새에 낀 정부의 고민은 이해가 가지만 ‘속앓이’만 한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당당하게 국민에게 “이런 이유로 한일 정상회담을 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국민의 의식은 외교의 우선순위를 가릴 만큼 성숙해 있다.
정연욱 정치부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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