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희아(20) 씨의 스토리는 플라이셔와는 또 다른 ‘인간 승리’ 사례다. 이 씨는 한 손에 두 개씩 네 손가락만 지녔고 허벅지 아래로 다리가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도 못 꿨을 터이다. 그런 이 씨가 다음 달 팝 피아니스트 리처드 클레이더만과 협연을 갖는다. 6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건반 소리를 내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는 소녀, 뇌(腦)의 이상 때문에 5분 이상 악보를 외우면 두통이 온다는 소녀의 소망이 마침내 이뤄진 것이다. 이 씨는 11세 때 클레이더만의 연주를 접하고 ‘마음속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장애인들에게 겸양(謙讓)을 가르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주변에서 받는 도움보다 더 큰 것을 돌려주는 셈이다. 클레이더만은 이 씨의 소식을 전해 듣고 “내가 왜 피아노를 쳐야 하는지 알겠다”고 했다고 한다. “연주는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장애 아가씨의 말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소명(召命)을 새삼 깨달았다는 뜻일 것이다.
▷이 씨는 요즘 잦은 콘서트 요청으로 바쁘다. 사람들이 이 씨의 연주를 듣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그의 연주가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씨의 모습을 통해 음악 이상의 감동을 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몇 달 전 이 씨를 만난 본보 기자는 이 씨가 “패티 김 아줌마처럼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욕심도 많은 아가씨인가 보다. 클레이더만과의 협연 무대에서 이 씨의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고 싶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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