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민 목숨보다 수령 초상화가 소중한 北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0분


평안남도 남포시의 한 농촌에서 불이 났다. 퇴근길의 한 광산 지배인이 불길을 뚫고 들어가 고(故)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상화부터 들고 나왔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시 불 속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를 보고받은 김 위원장은 “온 나라가 알도록 은정 깊은 사랑을 베풀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사람 목숨이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만도 못한 나라다.

정부는 빠르면 이번 주 유엔총회에서 표결될 유럽연합(EU)의 대북(對北) 인권결의안에 대해 아직도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전례에 비추어 기권할 것이라는 전망뿐이다. 국군포로 출신으로 1994년 귀환했던 조창호 씨는 “이런 정부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또 다른 탈북자는 “정부의 기권은 북한 동포에게 그 안에서 그냥 죽으라는 소리와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 정부의 귀에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소한 일’로 북한정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뿐이다.

납북자가족협의회장 최우영 씨는 동진호 어로장이었던 아버지 최종석 씨가 납북된 지 18년째지만 생사조차도 모른다. 민주노총 조합원이기도 한 최 씨는 민노총 지도부가 올해 초 한 집회에서 비전향 장기수를 “통일일꾼”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장기수는 영웅처럼 떠받들면서 납북자들의 송환을 위해서는 말 한마디 없는 지도부의 위선에 민노총 유니폼인 빨간 조끼를 벗어버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됐는지 개탄스럽다. 김정일 폭압체제에 대해선 입도 뻥긋 못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참상을 거론하는 사람은 냉전의식에 갇혀 있는 ‘수구 꼴통’으로 몬다. 명색이 민주·인권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북한 인권을 각론으로 다루지 않아야 한다”는 교묘한 논리로 핵심을 피해 나간다. ‘진보’를 가장한 이들의 이율배반이야말로 반민족, 반인륜의 전형이다. 우리는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똑바로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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