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듣기는 언어생활과 의사소통의 필수 요소이다. 원활한 언어소통의 전제조건은 평등한 상호존중이다. 전제가 무너지면 일방적 독백이나 권위에 의한 지시만 있을 뿐이다. 말하는 사람의 위계적 위치를 드러내는 표현 앞에서는 진솔한 대화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균형 잡힌 말하기 듣기가 안 되는 곳이 많다. 그런 조직은 굳는다. 효율성이 떨어지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 국회가 그렇다. 인사청문회 얘기다. 의원들은 청문회를 열어놓고 듣기는 뒷전이고 말하기에만 열중한다. 청문회장은 의원들의 5분 스피치 경연장이다. 청문회 도중에 “지금 질문해 봐야 어차피 TV 생중계도 안 되는데 그만하고 나중에 다시 시작하자”고 말해 자신을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자로 착각하기도 한다. 청문회를 매스컴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지 만 5년이 지났지만 아직 회의진행 규칙조차 없다. 올해도 새해 벽두부터 경찰청장 후보자를 시작으로 11차례에 걸쳐 모두 14명의 공직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 통과율은 100%였다. 이 제도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쉬 가시질 않는다.
인사청문회는 공직수행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다. 따라서 의원들은 각각의 공직 자리에 걸맞은 직무능력 검증을 위한 지표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우리 인사청문회는 겉모양이 미국의 것과 비슷하지만 내용은 영 딴판이다. 연방회계감사원(GAO)이 만든 직무능력 검증 질문 항목이 우리 국회에는 없다. 동아일보의 보도(11월 28일자 A1면)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청문회에서 물었던 총 2073개의 질문 중에서 직무능력에 관한 것은 8.6%에 불과했다. 청문회의 본말이 뒤집힌 셈이다.
‘과연 누가 적임자인가’를 따지기보다 ‘누가 약점이 없느냐’에 초점이 맞춰지는 청문회는 유능한 인재들에게 인사 공포증만 증폭시킬 뿐이다. “대한민국의 공직은 신만이 맡을 수 있다”는 말이 퍼져서는 곤란하다. 개인의 과거 전력을 캐내어 폭로하는 일은 파파라치의 몫이다.
우리 청문회에서는 막연한 질문과 원론적인 답변, 신변잡기, 아부성 질문, 황당한 질문이 난무하는 것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모 의원은 “총리로 인준된다면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에게는 정치적 견해를 밝히라는 난센스를 범했다.
물론 부실한 사전검증과 이른바 코드인사에서 오는 문제를 인사청문회를 통해 일거에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같은 ‘무늬만 청문회’가 계속되는 한 다음 개각부터 국무위원까지 청문회 대상에 포함시킨다 해도 공직수행 능력 검증이라는 본래의 취지는 못 살린다.
의원들은 고위 공직 후보자의 업무수행 능력, 도덕적 권위, 국민의 대표로서의 정치 감각, 변동하는 사회 현상에 대한 판단능력을 ‘빗질하듯’ 찾아낼 수 있는 지표 구실을 하는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후보자를 의원의 언어 공간 안으로 납치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후보자의 말을 두 배로 경청해야 한다. 청문회를 진행하는 의원들의 귀도 둘이지 않은가.
강성남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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