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처럼 상생을 위해 협력한다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양극화의 주요 원인이 대·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격차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생협력상’은 역으로 상생의 희귀함을 말해 준다. 이런 협력모델은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등 일부 대기업에서만 관찰된다.
일반적으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용을 떠넘기는 관행이 여전하다. 가격경쟁이 세계적으로 치열한 자동차산업을 보자. 부품업체가 조금 이익을 냈다 싶으면 곧바로 대기업에서 납품단가 인하 압력이 들어온다. A 부품회사는 지난해 순이익을 많이 냈다는 이유로 완성차 업체의 단가 인하 타깃이 됐다. 이 업체는 단가 특별인하를 실시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업체가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나 근로자를 위한 임금 인상을 하기는 어렵다.
기업 간, 근로자 간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에서 대기업 평균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중소 부품업체의 평균임금은 1996년 61.4에서 2002년 43.0으로 떨어졌다. 전자산업 부품업체도 같은 기간 62.7에서 45.6으로 하락했다. 중소업체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4.47%로 3년 연속 하락했다. 생산성 격차를 감안하더라도 중소기업은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대기업에 뺏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기업만 탓하기도 어렵다. 대기업은 세계시장의 가격 인하 압력에 직면해 있다. 내부적으론 강력한 노조 때문에 임금이나 고용 유연성을 통해 가격 압력을 흡수할 여지가 없다. 경영 측면에선 미국식 지배구조의 확산과 외국인 지분의 급증으로 단기 수익과 주주 배당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러나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이익이 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보면 대기업 자신의 살을 파먹는 일이다.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게 되면 대기업도 부품소재를 해외에 의존하면서 교역조건 악화와 가격경쟁력 상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기득권을 누려온 대기업 근로자들도 미래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
이달 중 청와대에서 ‘대·중소기업 상생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회의를 위한 회의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속 가능한 상생을 위한 컨센서스를 유도해 내야 한다. 우선 대기업의 경영권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현명한 경영자는 중장기적으로 중소협력업체의 발전이 모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생산성만큼 정당한 몫을 받도록 하는 일도 시급하다. 이는 기업 간, 근로자 간 양극화를 줄이고 궁극적으로 국민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
임규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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