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서령]쓴맛 모르면 단맛도 모른다

  • 입력 2005년 12월 5일 03시 00분


사는 방식이 달라진 모양이다. 눈 오면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게 일상 풍경이었는데 첫눈 내려 환해진 거리에 눈 맞는 이들이 별로 없다. 귀가를 서두는 차만 즐비하다. 눈길이 미끄러우니 일찍 귀가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그거야 세종로 사거리 전광판에서 반복되는 공익광고의 문구이고, 실없이 껑충껑충 뛰거나 환호성을 질러 대며 거리를 쏘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첫눈 온 거리가 노래 없는 축제 같다.

‘눈 온 날에 무기력하고 우울한 통행인을 보지 못하였다. 부드러운 설편(雪片)이 생활에 지친 우리의 굳은 얼굴을 어루만지고 간질일 때…. 부지중 이웃 사람들에게 경쾌한 목례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명의 구각을 탈(脫)하고 현란한 백의를 갈아입을 때 도회는 문득 얼마나 조용해지고 자그마해지고 정숙해지는지 알 수 없다’고 흥분하던 김진섭의 ‘백설부’를 읽으며 자란 나 같은 세대는 눈 오는 밤에 조용히, 안전하게 잠들 수가 도무지 없다. 발이 무겁게 젖어올 때까지 눈을 맞다 찻집 난롯가에 둘러앉아 다시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지켜보는 것이 눈에 대한 예의인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옹기종기 둘러앉는 난로란 게 없어진 지도 한참이다. 감수성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낀다. 만남의 방식도 달라졌다. 만남의 방식이 달라진 건 의사소통 기술들이 놀랍게 발달한 결과일 것이다. 난로나 아랫목이 없어지니 사람들이 밀착해서 둘러앉을 이유가 없어졌고 휴대전화 안 가진 사람이 없으니 굳이 얼굴을 마주하고 앉을 필요도 없어졌다. 공간 전체가 따뜻해지는 난방 방식, 흔해 빠진 휴대전화가 우리에게 반드시 득일까. 우선 나부터 따뜻함에 중독돼 눈 오는 거리를 전처럼 헤맬 수가 없어졌다. 콧등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소스라치는 환희인 건 추위를 느끼기 전까지일 뿐이다. 추운데 무슨 청승이랴 싶어 남들처럼 히터 빵빵한 차 안으로 얼른 도망친다. ‘창밖을 봐, 첫눈이 와’는 해마다 계절의 끝에 준비된 놀랍고 싱그러운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 말을 듣고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을 사람에겐 맥 빠진 비명에 불과하다. 추위에 대한 내성이 없어졌다. 그러니 오래 눈을 맞기는 글렀다. 눈을 즐기는 방식도 잗다래질 수밖에 없다.

다른 고통에 대한 내성은 있는가? 아니다. 아픔을 견디는 힘이 골고루 없어졌다. 눈 맞기만 글러 버린 게 아니라 이래서는 참고 견뎌야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기쁨을 모조리 얻지 못하는 게 아닐까? 모든 것이 너무 쉽다. 아무것도 아프지 않다. 그 무섭던 치과 치료까지 아프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거야 물론 백번 환영할 일이지만 통증을 참을 줄 아는 사람들이 줄어든 세상은 두렵다.

아이를 낳을 때도 제왕절개를 선호하거나, 일부러 청하지 않으면 진통을 생략해 버리는 무통분만이 흔하다고 한다.

며칠 전 전철 안, 내가 탄 칸에 앉은 10대와 20대는 하나같이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통화 중이었다. 바로 곁에 앉은 이가 누군지 안중에 없을 것은 물론이었다. 저렇게 긴급한 용무들일까.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에다 들이는 시간과 공력 대신 마음 턱 놓고 하는 소통방식이 단지 편해서 그런 건 아닐까. 만남은 기쁨임이 확실하지만 실은 긴장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끊임없이 눌러대는 문자 메시지와 컴퓨터 화면의 소통이, 실제 사람의 표정과 체온과 숨결만 할까. 디지털 신호가 그걸 대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도 아깝고 하도 귀해 추위와 더위를 막아 주는 건 기본이고 구체적인 통증이나 고통을 맛볼 기회까지 모조리 뺏어 버린 게 아닐까.

성숙엔 아픈 체험이 필수다. 아파야 의연할 수 있고, 아파야 겸허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아픈 시간을 견뎌 내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푸짐하게 첫눈이 왔다. 사람이 잘 산다는 건 삶의 매 순간을 충분히 음미하는 거라고 확신한다. 그 음미에 ‘쓴맛’이 빠져서는 말짱 허사다. 쓴맛 없이는 단맛도 없다. 인생 최고의 기쁨은 역시 사람끼리 눈빛과 숨결과 온기를 나누는 데 있다. 거기 설령 통증이 따라오더라도! 한 해가 다 가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않은 친구가 여럿이다. 정말 바빠서 그랬을까? 나의 나약함을 반성한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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