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호섭]동아시아 무대 中-日은 뛰고 있는데…

  • 입력 2005년 12월 9일 02시 59분


동아시아 16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제1차 동아시아정상회의가 14일부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다. 이번 회의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추진이다. 무역 투자 등 경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을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통합 모형이 모델이며, 경제교류 확대로 빠른 경제성장을 한 스스로의 경험이 이 구상의 배경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추진을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다. 주도권 다툼은 세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우선 동아시아의 지역 범위에 관한 이견이다. 중국은 동아시아 공동체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3(한중일)이 중심이 돼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아세안 지역에서 화교들의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인도와 호주 등을 배제하는 것이 자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 반면 중국의 독주를 우려하는 일본은 동아시아정상회의 참가국들이 동아시아 공동체에도 모두 참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아세안+3 외에도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정상회의 개최 빈도를 둘러싼 대립이다. 일본은 매년 개최하자고 주장한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추진에 있어 정상회의가 실질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중국은 3년에 한 번 개최를 주장하고 있는데 호주 등의 참가로 자국의 주도권이 쉽게 발휘되지 않을 정상회의의 의미를 실질적으로 축소시키려는 의도에서다.

셋째, 미국에 대한 배려 측면이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는 상당한 주도권을 행사하였으나 자신이 빠져 있는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태평양 국가임을 자임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에 참여할 수 없다면, 적어도 미국의 세계전략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나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호주 일본 뉴질랜드 등이 그러한 국가에 해당한다. 일본은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아세안+3 회의에서 대변해 동아시아정상회의 참가국 확대를 요구했으며, 결국 그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물론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반발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불만을 품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지역 외교에서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찬물을 끼얹고 있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얘기다.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 참배하는 것”이라는 고이즈미 총리의 ‘해명’을 한국과 중국이 곧이곧대로 믿을 리 만무하다. 결국 중국은 4일 아세안+3 정상회의(12∼1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기간에 열릴 예정이던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연기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예년에는 아세안+3 정상회의 기간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개최돼 왔던 점에 비춰 보면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한중일 3국 정상이 자리조차 같이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일본의 대아시아 외교가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일본 내 비난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1년에 몇 차례씩 한국, 중국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고 반박해 왔으나 최소한 이번에는 이런 반박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내의 비판에 대해 중국의 발표가 나온 이튿날 바로 “야스쿠니는 외교카드가 될 수 없다”고 반격했지만,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지장을 초래한 책임은 막중하다고 하겠다.

중-일의 주도권 다툼에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아세안 국가들의 독자적 목소리다. 아세안이 중국, 일본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독자성’ 주장은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에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남방외교 전선에 있어서 중-일과 아세안의 움직임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북아 중심 국가를 천명하면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우리의 모든 외교 문제가 해결된다는 태도로는 남방외교에서 입지(立地)가 없다. 북방외교와 남방외교의 균형 있는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김호섭 중앙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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