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을 많이 내는 사람은 정치인이다. 정치적 비중이 컸던 인물일수록 그런 유혹을 많이 느끼고, 그 틈을 출판사 상술(商術)이 비집고 들어선다. 얼마 전에는 박철언 전 정무장관이 노태우 정권 시절 있었던 남북 접촉과 3당 합당 등에 얽힌 얘기를 모아 책을 냈다가 진실 여부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직접 당사자의 회고란 이처럼 객관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법이다.
▷청와대 부속실에서 2년간 행정관을 지냈던 이진 씨가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이란 책을 냈다. 2002년 말 대선 직후 노무현 당선자가 정치자금 비리를 털고 가기로 했다가 참모들의 반대로 무산됐던 일, 비리에 개입한 친인척에게 호통 쳤던 일, 2004년 봄 탄핵 전후 대통령의 심경 등 여러 일화(逸話)가 등장한다. 필자는 “노 대통령이라는 섬과 국민이라는 육지 사이에 다리를 놓아 봄으로써 섬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는 상식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탈(脫) 권위에 앞장선 노 대통령의 인간적 모습이다. 또 하나의 ‘현실 정치용’ 대통령 찬가(讚歌)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대통령 비망록은 퇴임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임기 동안 있었던 일화나 비화(秘話)를 있었던 그대로 정리하는 것이다. 잘했던 일에 못지않게 잘못하고 부끄러웠던 일도 솔직담백하게 적어 한 시대의 교훈이 될 때 비망록은 가치를 얻는다. 이번 비망록은 나오기 전에 대통령과 비서진이 먼저 읽어 봤다니 애초부터 홍보물이었던 셈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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