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대학가요제’가 생기고 노래 좀 한다는 친구들이 열병처럼 “나는 대학 가서 ‘대학가요제’에 나가겠다”고 아우성을 치던 중학생 때,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라는 트로트를 부른 여대생 출전자에 대한 교실의 품평은 극과 극을 달렸다. “대학생 노래 같지가 않잖아.” “그래도 피아노 치니까 멋지잖아.”
묘하게 애절하면서도 낯설었던 심수봉의 데뷔곡 ‘그때 그 사람’을 다시 부르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한 뒤였다. ‘그때 그 사람’을 주먹 치켜들어 가며 합창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라고…. ‘그때 그 사람’은 독재자를 풍자하는 운동가요로 개사(改詞)돼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무슨 모임에서건 ‘의례’처럼 꼭 한번은 부르게 되는 노래가 ‘아침이슬’이었다.
양희은과 심수봉 두 여가수가 내 세대의 삶에서 조우한 지점은 그랬다.
그 두 사람이 함께 콘서트를 한다. 오늘 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이 콘서트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 30주년을 기념하는 30∼50대 여성 애청자 초청 무대다.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양심콘서트’라는 이름이 붙여지긴 했지만 동시에 무대에 서지는 않는다. 1, 2부로 나뉘어 공연하는 중에 양희은이 심수봉의 노래 ‘여자이니까’를 부를 뿐이다. 심수봉은 “양희은 씨가 장조의 가수라면 나는 단조의 가수라 서로의 노래를 부르려면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 노래는 슬프고 외롭고 한이 많아요. 그래서 양희은 씨의 청량하고 툭 터진 소리, 그 힘과 당당함, 밝음이 늘 부럽죠.”
포크와 트로트, 해와 달, 밝음과 그늘처럼 달라 보이는 두 사람. 노래 부르는 일이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가수가 되었지만 둘은 한동안 무대에서 자신들의 노래를 부를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시위 현장에도 정치에도 뛰어든 적 없는 천생 가수지만 한 사람은 노래가 정권 비판의 뉘앙스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한 사람은 통치권자가 최후를 맞는 현장에 있었다는 상반된 이유로 노래를 잃었다. 한동안 모국을 떠나 타향살이를 했고 깊은 병을 얻어 오래 심신의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그 삶의 곡절을 담아 노래한다.
연말 송년회를 위해 모인 친구들 중 누군가는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상록수)라고 꿈도 자존심도 꼿꼿하기만 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며 노래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빠른 박자로 “죽도록 사랑하면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해”(미워요)라고 못 이룬 꿈의 한을 흥으로 바꿔 주지 않는다면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워질 것이다.
장조의 양희은과 단조의 심수봉. 한 시대를 더불어 노래해 온 두 사람 때문에 꿈은 더욱 빛나고 슬픔은 더 깊이 위로받을 수 있었다.
정은령 문화부 차장 n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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