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화사업은 당시 국방부, 내무부, 문교부, 각 대학 등 관계기관이 총동원된 ‘정권의 폭력’이었다. 국방부 과거사위의 조사는 군이 정권 안보에 동원된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일단 의미가 있다. 피해자들이 뒤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하게 된 것도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는 허점과 문제점도 적지 않다.
과거사위는 녹화사업 조사결과가 새로운 사실인 것처럼 발표했지만 2002년 10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미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당시 의문사위도 전 전 대통령이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관련 문건까지 제시했다. 피해자 수도 그때 이미 1000명이 넘는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렇다면 국방부 과거사위는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반성 자료’를 내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녹화사업 지휘체계에 대한 언급은 물론이고 실무 책임자들의 진술과 피해자들의 증언도 없다. 더구나 녹화사업 시행과정에서 6명이 사망했는데도 이 사업을 주도한 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의 무자비한 고문과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2002년의 의문사위는 당시 기무사가 조사를 거부하자 실무책임자의 신분까지 공개했다. 과거사위는 “문서에 입각해 조사했다”면서도 정작 문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외에도 각 부처, 또는 개별법에 따른 각종 과거사위를 가동하고 있다. 중복 조사, 과시용 조사가 되지 않도록 전문성과 효율성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략적 이해에 따라 사안별로 조사의 폭이나 심도(深度)가 영향을 받는다면 사회적 갈등만 깊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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