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지닌 한국은 원유와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에너지원 중 3분의 2에 가깝고 에너지 수입액이 국가 총수입의 4분의 1에 이른다. 정유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6.7% 이상의 규모지만 원료에 해당되는 석유자원을 개발하는 산업은 0.1% 미만으로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
국가 총생산량 세계 10위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석유자원 확보 수준은 대단히 취약하다. 그런데도 1993년 동력자원부가 산업자원부에 흡수 통합된 뒤 에너지 자원 정책의 우선순위가 밀리게 되었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또 외환위기 이후 투자 재원의 부족으로 민간의 해외자원 개발사업의 급격한 위축 등으로 자원 확보의 총체적 역량이 크게 약화된 실정이다.
에너지원의 자립적 확보 없이는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선진국에서 이미 검증된 국가 전략이라는 점에서 이제 혁신적 수준의 에너지 정책이 확립되어야 할 시점이다.
인구 경제규모 등 제반 여건이 한국과 비슷한 이탈리아, 스페인이 세계적인 석유파동 직후 국영회사를 집중 육성해 해외 자원 개발정책을 공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 비해 뒤늦게 해외 석유 개발에 뛰어든 프랑스도 이를 국가 산업으로 성장시켜 석유 자급률이 80%에 이른다. 이런 국가들은 자원빈국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생존전략 차원에서 정부의 강력한 지원 이래 해외 자원 개발사업을 활성화해 고유가의 충격을 능동적으로 흡수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세계적 고유가 상황을 자국의 대외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3년 자주 개발 목표 18% 달성을 위해 20조 원 규모의 해외 자원개발 추가 재원의 확충과 신규 기술인력 4000여 명 육성 및 자원개발 전문기업의 육성 추진 등 에너지 수급 시스템의 근본적 혁신안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석유 개발사업은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사업으로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금 조직 기술력의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재원의 대폭 확충 및 유전개발펀드 조성 등으로 개발자금을 대형화하고 민간의 해외 자원개발 참여 확대 방안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
유전 개발사업의 성공률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참여 사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력과 이를 분석하는 기술력이다. 현재 석유개발사업을 주도할 전문 기술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므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기술인력 양성 시스템이 시급히 확립돼야 한다.
에너지정책의 특성상 거시적 목표를 구체화하고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에너지 전담조직의 확대 개편과 전문 관료의 양성 등을 포함한 조직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과거 저유가시대에는 에너지자원 개발사업에 대하여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수요자 중심의 사고가 팽배했지만 고유가시대에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석유자원 확보가 국가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자원빈국인 한국도 석유 개발사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총력적으로 지원한다면 머지않아 에너지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강주명 서울대 교수 자원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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