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교통은 멈췄지만 뉴욕은 멈추지 않았다

  • 입력 2005년 12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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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뉴요커들이 가장 날씬하다고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많이 걷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맨해튼에 출근할 때 자가용 이용을 꺼리는 것은 건강보다는 돈 때문이다. 통행료 5달러를 내고 도심에 들어가면 보통 한 시간에 15달러에서 40달러나 하는 엄청나게 비싼 주차비를 또 물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인구가 800만 명에 이르는 뉴욕에서는 지하철과 버스의 하루 이용객이 연 인원 7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대중교통의 수송분담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래서 당초 뉴욕 시 교통노동조합(TWU)이 전면 파업을 선언했을 때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파업 이틀째인 21일 기자가 맨해튼으로 차를 몰았을 때 ‘맨해튼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파업 기간 중 맨해튼 진입 요건인 ‘최소 4인 승차’를 검사하는 과정에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또 많은 사람이 자가용을 몰고 나와 맨해튼은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교차로에서 엉킨 차량, 영하의 날씨 속에 힘들게 걷는 시민들, 발을 동동거리며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기차표를 사기 위해 수백 m 늘어선 사람들…. 곳곳에서 파업에 지친 시민들의 어두운 표정이 목격됐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런 가운데서도 도시 전체의 핵심적인 기능은 큰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경제적 피해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뉴욕 증시 등의 금융 거래에는 어떤 장애도 발생하지 않았다. 비상 응급서비스도 제대로 작동됐다. 시민들도 ‘4인 승차’를 비롯한 귀찮은 파업 대책을 큰 불만 없이 따랐다. 불편은 지속되고 있지만 질서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폭력적인 시위나 이를 진압하는 경찰력 대신 법원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법원이 불법파업을 하는 노조에 파업 기간 중 하루에 100만 달러씩 벌금을 내도록 ‘엄정하고도 시장 친화적’으로 대응하자 벌써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급 노조인 국제TWU가 연대해서 벌금을 내야 할지도 모르게 되자 “뉴욕TWU는 즉각 파업을 철회하라”고 공식 요구한 것이다.

25년 만에 닥친 교통노조 파업의 와중에도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작동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하는 모습은 세계적인 도시 ‘뉴욕의 힘’을 새삼 느끼게 했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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