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형두]문화상품 知財權보호 강화 시급

  • 입력 2005년 12월 24일 03시 02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중소도시 장날이면 어김없이 한 자리를 차지했던 게 약장수다. 무슨 약을 팔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손님을 모으기 위해 했던 차력술이나 곡예는 생각이 난다. 돌이켜보면 그 자체가 훌륭한 공연이 될 수 있었겠다 싶지만 약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덤으로 주어졌던 것이다.

최근 정부가 게임 영화 방송영상 애니메이션 음악 캐릭터 출판 등 문화 부문의 작년 수출 실적을 잠정 집계한 결과 모두 8억 달러로 2003년의 6억1000만 달러보다 31% 늘어났다. 한류 바람의 영향도 적지 않았는데 올해는 1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매년 세계의 부호 서열을 발표하는 ‘포브스’라는 잡지가 작년 중국 부호 서열 3위에 올려놓은 천톈차오(陳天橋) 씨는 ‘성다(盛大)’라는 온라인게임 회사의 대주주다. 하지만 성다의 주 수입원이 한국의 액토즈소프트라는 회사의 온라인게임을 중국 내에서 서비스하면서 받는 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라 할 것이다.

곰이 돈을 벌어다 주는 나라도 있다. 디즈니 만화캐릭터인 곰돌이 ‘푸우’는 1931년에 만들어졌으니 75년째 되는 내년이면 저작권보호기간이 만료되어 서울 남대문이나 이태원에서도 값싼 곰돌이 인형을 만들어 팔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미국 의회는 1998년에 저작권보호기간을 20년 추가 연장함으로써 푸우는 2026년까지 저작권의 생명을 연장하게 됐다. 미국에서 저작권법이 처음 만들어진 1790년에는 보호기간이 고작 14년에 불과했다. 지난 40년 동안에 무려 11번에 걸쳐 보호기간이 연장됐다고 하니 푸우가 백수를 눈앞에 둘 2026년에 가서 또다시 연장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임종을 앞둔 곰돌이의 저작권 생명이 연장된 것은 다름 아닌 월트디즈니사의 로비 덕이었다. 그것은 미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했다. 현재 디즈니사는 곰 외에도 호랑이, 생쥐와 고양이, 그리고 오리를 가지고 오늘도 전 세계에서 석유 한 방울 쓰지 않고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최근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우리보다 몇 배나 인건비가 싸서 상당수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문을 닫게 한 중국이 인건비가 더 싼 곳을 찾아 공장을 옮긴다니 할 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지적재산(IP)과 정보기술(IT)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식정보산업이 향후 50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공급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급 확대와 함께 제도적 보장이 필요한데 문화의 산업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제도적 보장은 지적재산권 제도에 있다.

1000원짜리 지폐의 가치가 100원짜리 동전의 가치보다 크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에게 “지폐를 줄 테니 동전을 내놓아라”고 하면 아이는 움켜쥔 주먹을 펴지 않는다. 지적재산권 보호가 마치 이와 같다.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면 당장 불편할 뿐 아니라 손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더 큰 부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약장수 곁에 있는 차력사를 공연장으로 보내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는데 여전히 약장수의 조수로만 쓰는 것은 시대착오다. 지속적인 한류의 확산과 발전에 힘을 쏟는 한편 한국 문화상품이 해외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서부터 지적재산권을 철저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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