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변우혁]“내 삶 끝나는 날 숲으로 돌아가리”

  • 입력 2005년 12월 26일 03시 03분


지난주 ‘수목장(樹木葬)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 창립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모임의 취지는 우리 후손들에게 숲이라는 자산을 물려줄 수 있는 수목장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것. 황인성 전 국무총리와 김성훈 상지대 총장 등 사회 저명인사 30명은 이 자리에서 자신들의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르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포부와 숭고한 의지를 담은 대화들이 오갔다.

수목장은 시신을 화장한 뒤 골분을 나무 밑에 묻는 새로운 장묘 방식이다. 자연 훼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나무라는 매개체가 있어 산골(散骨) 장례의 허전함을 보완해 주는 장묘 문화 개선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9월 타계한 김장수 고려대 명예교수의 첫 수목장이 소개되면서 신선한 감동을 준 지 불과 1년 만에 국민의 절반 정도가 수목장에 호감을 갖고 있고, 수목장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의지를 가진 이가 28%에 이른다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또 한 인터넷 매체가 실시한, 선호하는 장묘 방식 여론조사에서도 분묘나 납골은 각각 10∼20%대에 그쳤으나 산골은 50∼60%의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좁은 국토 상황을 고려하면 납골조차도 부담이니 산골을 통해 나무나 숲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럽다는 국민의 환경의식 변화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수목장은 산골이 갖는 ‘2%의 부족’ 즉, 허무함을 보완하며 후손에게 푸른 숲까지 선물로 주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에서 나무는 자연숭배사상의 중심에 있어 하늘의 신과 지상의 인간을 이어 주는 연결고리로 묘사되곤 한다. 자연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는 과정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매장 및 산골, 돌 속에 안치되는 납골과는 달리 수목장은 나무로 돌아가게 돼 자연으로 회귀하는 생명의 순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수목장은 또 토지 확보 문제와 님비(NIMBY)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 추모목 1000만 그루가 제공되면 전 국민의 묘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다.

이렇듯 수목장은 아주 훌륭한 장묘 방식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우선 수목장을 할 수 있는 숲이 넉넉히 마련돼야 한다. 잘 가꿔져 아름다우면서도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숲이라야 수목장에 이용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이지만 그런 숲은 흔치 않다. 또한 상업주의적인 수목장이 난립한다면 과장 및 허위 광고 때문에 국민이 고통 받을 우려가 있다. 이 문제는 국공유림을 다량으로 값싸게 공급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무덤에서 요람까지’라는 복지국가 구현을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국가 중심의 묘지 공급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수목장의 정착과 확대에 있어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은 법률적 정비 문제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자연장 규정을 신설하면서 산골과 함께 수목장도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정해진 구역에 화장한 유회를 뿌리고 관리하는 산골공원은 자연친화적인 시설이지만 일종의 묘지 시설이다. 그러나 자연 상태의 숲에서 산림 경영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장묘 문제를 해결하는 수목장림은 묘지 시설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숲이다.

따라서 묘지를 관리하는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숲을 관리하는 산림청이 주무부서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행정 부처 간의 불필요한 마찰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산림청은 산지관리법 등에 수목장림의 조성과 관리 운영 규정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목장림은 국민 전체의 복지를 개선하는 과제인 만큼 부처 간 협조 하에 전문 영역별로 공조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변우혁 고려대 교수·환경생태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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