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노무현 대통령은 종교계 지도자들을 만나 개정 사학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법 발효 절차를 강행하겠다고 확인한 것이다. 여당이 사학법 개정을 ‘무리한 졸속 입법’으로 밀어붙이자 고교의 45%, 대학의 80%를 차지하는 사학들은 일전 불사의 태세를 보이고 있다. 종교계는 ‘순교’ ‘정권퇴진 운동’을 거론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이 이들과 정면대결을 택한 것은 옳지 않다.
정부는 사학법 개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다고 주장하지만 개정 사학법의 ‘학교운영 자율성 침해와 교육 왜곡’ 위험성을 뒤늦게나마 알게 된 국민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보다 못한 국공립학교 교장들까지 반대의 대열에 동참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노 대통령은 종교계 지도자들에게 “시행령에서 사학 자율성이 구현되도록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시행령을 통해 종교계 사학이 개방형 이사를 선임할 때 같은 종교인만 추천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종교계는 “종교인이 부지기수인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모법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도 시행령에 떠넘기는 것은 무마용에 불과하다. 종교계와 비종교계 분리도 정당성이 없다.
산적한 국정과제를 놔두고 정부가 교육현장을 어지럽힐 개정 사학법을 끝까지 관철하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노 대통령이 국회에 재의(再議)를 요청하는 것이 문제를 순리로 푸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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