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이 통일된 지 2개월 후인 1990년 12월에 발행된 1991년판 연감에는 독일 통일 소식을 아예 싣지 않았고, 이후에도 10년 동안 주요 뉴스에서 제외하거나 부정적인 시각 일변도로 서술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김석향(金石香)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교수가 최근 세종연구소 발행 ‘국가전략’ 4호에 기고한 ‘조선중앙연감에서 서술하는 독일 통일의 과정과 결과’라는 논문에서 드러났다.
연감이란 1년 동안 일어난 국내외의 중요 사건 사고와 주요 자료, 통계 등을 요약 정리한 정기 간행물이다. 연감이 그해 최대의 국제적 사건을 외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같은 연감이 1990년 5월의 예멘 통일을 비중 있게 다룬 점으로 볼 때 이는 ‘의도적 누락’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북한이 한반도에서 독일 통일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그 근거로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1991년 신년사에서 “최근 다른 나라의 흡수통일 방식에 현혹된 남조선 당국자들은 어리석은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한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북한도 진실을 마냥 가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연감은 통일 독일의 부정적 현상만 부각하더니 2001년판에 가서야 처음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북한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건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점차 독일과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국제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10년에 걸쳐 ‘외면→부정→긍정’이라는 3단계의 인식 변화가 필요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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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문제와 인권, 위조화폐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들 현안에 대해 북한은 사실 관계에서부터 국제사회의 통념과는 다른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진실을 속단할 수는 없지만 문제의 해법은 북한 당국이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밝히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까지 우리는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윤종구 정치부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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