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 기자는 일본 수사관들에게 “동아일보는 조선 민중을 대상으로 창간된 신문으로, 일장기가 담긴 사진을 싣는 것은 조선 민중들로부터 환영받을 수 없다는 동아일보 내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일장기를 말소했다”고 진술했다. 총독부 비밀문서도 ‘동아일보는 평소 민족의식을 선동하는 태도를 갖고 있고, 기회 있을 때마다 비(일본)국민적 행동으로 나올 잠재의식이 있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적고 있다.
▷일제강점기 최대의 필화사건인 ‘일장기 말소 사건’에 대한 일각의 왜곡과 폄훼가 끊이지 않았다. 이길용 기자의 개인의 행위이지 동아일보의 항일투쟁으로 볼 수 없다거나, 동아일보에 앞서 다른 신문이 먼저 일장기를 지워 내보냈다는 식이다. 최근 발견된 이길용 기자의 회고록은 이런 주장을 잠재울 만하다. 이 글은 1948년 모던출판사가 발행한 ‘신문기자 수첩’에 실려 있다.
▷그는 회고록에서 ‘동아일보에서 일장기 말소는 항다반사(恒茶飯事·늘 하는 일)였다’고 술회했다. ‘무슨 건물 낙성식이니, 무슨 공사 준공식의 사진에는 반드시 일장기가 정면에 있는데 이것을 지우고 싣기는 부지기수였다’는 것이다. 손기정 사진 말고도 일장기 말소가 많았다는 것으로 동아일보의 반일 분위기와 민족의식을 전해 주는 증언이다. 마침 어제는 그를 기리는 ‘제17회 이길용 체육기자상’ 시상식이 있었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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