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國政 더 흔드는 ‘마구잡이 입법’

  • 입력 2005년 12월 27일 03시 00분


노무현 대통령은 여당이 ‘경찰 사기 진작’을 내세워 개정을 주도한 경찰공무원법에 대해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보완입법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재의(再議)를 요구할 경우 입법부를 무시했다는 부담도 있거니와, 개정 사립학교법도 거부하라는 여론의 압력 증폭도 피해 가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에 앞서 이해찬 국무총리는 개정 경찰법에 대해 “당정 협의가 원활하지 않았고, 정부 내 조율이나 검토 없이 불합리한 입법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종교계와 사학법인들이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며 반대하는 사학법이야말로 교육부 실무책임자들조차 배제한 채 ‘일방통행식’으로 입법됐고, 더 심각한 허점과 독소조항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행령으로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며 법 논리를 왜곡하는 무마책만 내놓고 있다.

한편으로는 경찰 공무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계에 대한 ‘코드’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경찰법과 사학법을 국회에서 졸속으로 개정해 놓고 후속대응 또한 이중적으로 하려는 정권의 모습이 역력하다. ‘기왕 주기로 한 떡은 일단 줘서 인심을 얻고, 밀어붙일 일은 끝까지 내 식대로 하겠다’는 계산을 눈치 채지 못할 국민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7대 국회의 이런 ‘마구잡이 입법’ 사례는 두 법에 그치지 않는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4개월 전에 개정한 정치자금법이 여야 합의와 달리 정치자금 전년 이월금을 포함시키는 내용으로 잘못돼 있음을 최근에 발견하고 뒤늦게 개정에 나섰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두 개의 상반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7명의 의원이 중복 서명했다. 또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사건이 터지자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8건이나 제출됐고, 학교급식 파동 때는 유사 법안이 6건이나 쏟아지는 등 ‘베끼기 입법’도 줄을 이었다.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의원(lawmaker)의 기본 책무다. 특히 국정 책임을 정부와 나눠 지는 여당 의원들은 마구잡이 입법에 따른 국정 난맥의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이를 잊으면 결국 표의 심판이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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