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에 인구 7만 명의 섬나라 ‘미국령 사모아’가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올해 농심 라면 100만 달러어치를 사 먹었다. 연 240만 개로 1인당 34개꼴이다. 최고 인기 품목은 ‘육개장 사발면’이다. 농심은 올해 세계 70여 개국에서 1억4000만 달러어치의 라면을 팔았다. 이 라면에 들어간 밀가루는 호주나 미국산이고, 라면을 튀기는 기름은 말레이시아산이다.
우리 국민 역시 세계 각국이 생산한 다양한 물건을 쓰고 있다. 김치 된장 고추장 메주 냉면 삼계탕 등 우리 고유 식품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과 베트남의 저임금 노동력이 김치와 메주를 만들고 있다. 가발은 1970년대 우리의 주요 수출 품목이었지만 지금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올해 가발 수입액은 1266만 달러에 이른다. 중국인과 인도네시아인의 머리카락이 한국인의 머리를 겨울 추위로부터 지켜주고 있다. 아랍은 원유를, 호주는 철광석을 우리에게 팔고 우리는 이들에게 휴대전화를 판다. 우리는 인구 4800만의 한국시장이 아니라 65억의 세계시장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무역협회는 올해 수출입 품목이 1만8000개를 넘고 수출입 금액은 547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교역 대상국은 200여 개국으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다. 1964년 수출입 품목은 1500여 개, 금액은 5억 달러였다. 교역 규모는 1100배, 수출입 품목은 12배가 늘어났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아프리카 53개국 전체 수출액보다도 많았다.
수출입의 양적, 질적 증가는 우리 국민을 포함한 세계인에게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누리게 해 줬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인생도 훨씬 다채로워졌다. 사모아 소비자는 한국산 라면을 즐기고, 한국 소비자는 사모아산 참치를 먹는다. 무역은 다양한 직업을 만들어 낸다.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이뤄 낸 경제적 풍요는 과학기술과 문화예술 분야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우리에게 이런 삶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 자유무역을 증진시킨 세계화다. 세계화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수출입은행이 주최한 수출진흥 논문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최항석(24·연세대 경영학과 석사과정) 씨는 “홍콩 반세계화 시위를 이해하지만 세계화는 불가피하다.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우리의 과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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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 말대로 세계화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경쟁에 뒤처진 농업과 중소기업 분야 등의 양극화 완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들에 대한 공동체의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 전통적 가치관이 해체되면서 극심한 아노미 현상이 나타나는 부작용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런 문화지체 현상을 극복하려면 ‘우리의 가치’를 세계에 파는 일 못지않게 ‘수입되는 외국의 가치’를 우리 것으로 소화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 ‘경제의 세계화’에 걸맞은 ‘문화의 세계화’가 무역한국의 또 다른 과제다.
임규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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