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네탓’으로 새해 시작한 與野

  • 입력 2006년 1월 2일 03시 00분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의 기자실 문이 열리자마자 보도자료 하나가 배포됐다. 박재완(朴宰完) 의원이 “2006년도 국민건강증진기금 운용계획은 무효”라며 지난해 12월 30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제1 야당의 불참 속에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기금의 2006년도 운용계획안은 7월 담배 갑당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354원에서 558원으로 인상되는 것을 전제로 짜였으나 인상의 근거인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라는 것. 모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근거로 한 기금 운용계획을 마련한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박 의원은 “이를 자의적으로 처리한 국회 예결특위 위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열린우리당 측은 “제정 및 개정될 법을 염두에 두고 예산안을 짜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반박했으나 박 의원은 “그런 편법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부터가 문제”라고 재반박했다.

박 의원의 대여(對與) 공세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시원하다”’며 동조하고 있다. 지난주 여당이 자신들을 배제한 채 중요 법안들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데 대해 속을 끓이던 참이었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여당이 유일한 야당 교섭단체인 우리를 무시하고 졸속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니 그런 결과를 낳은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은 여당 주도로 통과된 예산안과 법안의 문제점을 찾아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따라서 여야 간에 쟁점이 됐던 8·31 부동산 종합대책 후속 법안 등을 놓고 새해 벽두부터 정쟁이 재연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장외 투쟁을 하느라 법안 심의를 거부한 한나라당이나 한나라당을 빼고 법안 처리를 강행한 열린우리당 모두 국회 파행의 책임을 면키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양측은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정말로 국민을 의식했다면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는 행동을 일삼아선 안 될 것이다. 해가 바뀌면 조금씩 나아지는 쪽으로 변하는 게 순리(順理)일 텐데 올해는 이런 순리를 정치권에서 기대해 볼 수 있을는지.

이정은 정치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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