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라고 린다 허슈먼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지난해 12월호에서 밝혔다. 그는 전업주부를 선택한 여성은 스스로를 억압하고 사회에 해를 끼친다고 썼다. 그의 글에 따르면, “가정은 삶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시장이나 정부와 같은 공공 영역보다는 한 인간이 만개(滿開)할 기회를 별로 주지 않는다”고 했다.
허슈먼 씨는 “읽지 않는 사람은 읽을 수 없는 사람보다 나을 게 없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빌려 아이들과 집에 머물겠다는 여성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여성만큼이나 연약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첫째, 그들은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염두에 둬야 한다. “직장을 중요시하는 최고의 방법은 돈이다. 돈은 시장경제에서 성공의 척도이며, 대개 권력을 동반한다. 그리고 가정을 포함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둘째, 여성은 가사를 동등하게 분담할 수 있는 남편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이를 가지되 한 명만 둬라”라고 썼다. 두 아이의 엄마는 직장에 전념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육아를 걱정하는 전업주부는 “사회에서의 배척을 자처한 이들”이라고 허슈먼 씨는 결론지었다. 여성들이 전업주부라는 좋지 않은 선택을 계속한다면 남성들이 사회의 최고위층을 영원히 차지할 것이므로, 페미니즘의 기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때라고 했다.
하지만 허슈먼 씨의 글은 1975년식 시대착오적 페미니즘의 최고봉이다. 그는 틀렸다.
첫째, 고소득 직업을 갖는 것이 부모가 되는 것보다 인간을 더 풍요롭게 해 준다는 단정은 잘못됐다. 당신의 삶을 돌이켜 보라. 가족과 직장에서의 기억 가운데 당신이 고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은 어떤 것인가. 나는 그가 대형 법률사무소의 일원으로 하루를 지내 보기를 바란다.
둘째, 직장을 권력의 영역으로, 가정을 권력이 없는 영역으로 여긴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가정은 사람을 무정하게 만들고 권력이 우세한 그런 곳은 아니다. 그러나 비길 데 없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아이의 지능과 심적 습성, 운명이 생애 최초 몇 년간 대부분 형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세 번째 실수는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나는 특히 월간지 ‘코멘터리’에 실린 찰스 머리 씨의 ‘불평등한 금기’와 온라인 잡지 ‘에지’에서의 스티븐 핑커 씨와 엘리자베스 스펠크 씨 간 논쟁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여러 관련 연구결과 중 하나는, 여성은 사람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반면 남성은 사물과 추상적인 규칙에 흥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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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나온 에세이들을 살펴보면 거대 외교정책을 다룬 것만큼 가정생활을 주제로 한 것이 많다. 당신이 국가경쟁력, 빈곤, 학업성취와 같은 사회 경제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할수록 바람직한 육아와 좋은 가정에 대한 답도 더 많이 알 수 있게 되는 까닭이다.
허슈먼 씨는 분명히 역행했다. 힘은 부엌에 있다. 문제는 부엌에 머무는 여성이 아니라 그곳을 떠나는 남성이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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