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미동맹이 기로에 서 있다면 그것은 한국의 정치적, 정책적 변화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한미동맹이 처하고 있는 시련은 구소련의 붕괴에 따른 냉전의 종식, 그리고 2000년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의 화해무드 조성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한미동맹은 6·25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 미국이 가졌던 어떠한 동맹보다도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으로서는 제3국이 아닌 분단의 한 부분인 북한을 적대적 상대로 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특수하고 유일한 동맹관계였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6·25전쟁의 기억이 없는 세대가 정치 전면(前面)에 등장하고 남북한 관계가 호전되면 그 존재 이유가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의 동맹 결성 이유가 반드시 존속되어야만 동맹이 유지되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을 묶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소련의 위협이 그 존재 이유였으나 소련이 와해된 후 오히려 회원국의 수도 증가하고 동맹의 내용도 강화되고 있다. 유럽의 확대에 따른 안정에 필요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한미 간의 경우에도 설혹 북한의 위협이 감소되더라도 지역의 안정과 균형을 위해, 또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입지를 지탱하기 위해 동맹은 계속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미동맹의 지속적인 발전에 지장을 주는 요인 중에 미국의 정책과 태도가 한몫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이라크 침공의 과정 등에서 보여 준 것처럼 일방주의적 정책을 강행하여 동맹국들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더구나 포로들을 학대하고, 테러 의혹과 관련해 전화와 인터넷 도청을 남행(濫行)하여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국가라는 도덕성에 큰 손상을 입었다. 결과적으로 부시 대통령 2기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세계 평화를 위한 민주주의 확산”의 구호도 공허하게 들리게 되었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 일변도 정책은 북한 핵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라크에 얽매여 신빙성 있는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강경 입장만 고집한 미국은 결국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핵무기 제조 활동을 계속하는데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9·19 6자회담 합의라는 형식으로 마지못해 융통성을 발휘했으나 이미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럴 바에는 왜 진즉 협상을 시작하지 않고 지난 3년이라는 기간을 허비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북핵 문제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사실도 그동안의 대응책이 북한에 시간을 벌게 하는 결과만 불러왔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이처럼 국제 환경의 변화가 있고 미국의 정책이나 입장에 허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미동맹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가, 또 그러한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유럽과 일본, 호주 등은 동맹환경의 변화, 미국의 정책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도 미국과의 안보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동맹관리에 신경을 쓰고 약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현실은 명쾌하고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선택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하고 현명한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 성숙된 외교의 필수조건이다.
한승주 고려대 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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