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서령]사소함 속의 위대함

  • 입력 2006년 1월 6일 03시 03분


새해가 밀봉된 시간으로 내 앞에 던져졌다. 8700시간이 압축된 꾸러미다. 이 선물은 포장 상태가 정연해서 흡사 1인분씩 따로 묶인 국수 다발 같다. 24시간짜리 묶음 중 이미 나는 다섯 개를 풀어 헤쳐 소비했다. 아니 소비라는 말은 온당치 않다. 시간이란 국수 다발처럼 먹어치워 없애는 게 아니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 원재료에 가까우니 차라리 털실 뭉치 같다고 할까. 새 털실 꾸러미를 헐었으니 무얼 어떻게 짜야 할지 사방에서 궁리가 넘쳐 난다. 새해 나의 계획은 간단하다. 너무 어려운 무늬를 짜 넣겠다는 욕심이 부질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단순한 무늬가 더 아름답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올해 책 읽고 춤 배우고 산길을 걸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문학사상’에 대하소설 ‘토지’가 연재될 때 친구 정욱과 나는 동시에 그걸 읽었다. 새벽에 오줌 누러 나가는 척 밖에 나가 낮에 봐 둔 이웃집 호박을 몰래 따는 임이네의 탐욕을 함께 흉보곤 했다. 30년이 지났어도 정욱과 얘기했던 당시 인물들은 마음 안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마치 한동네 사람들 같다. 올해는 그런 살아 있는 독서를 하겠다. 가까운 사람들과 한 책을 동시에 읽는 기쁨을 맘껏 누리겠다.

춤을 배우려는 건 몸을 움직여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기술을 익히겠다는 뜻이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외롭게 버려두지 않겠다. 지금껏 홀대해 온 몸에 내 안의 신명을 싣는 법을 배우겠다. 그건 악기 연주로도 가능하고 자전거 같은 도구로도 이룰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춤이 기중 손쉬울 것 같다. 손을 위로 뻗어 우주 기운을 몸 안에 빨아들이고 아래로 내려뜨려 내 안의 욕심과 탁기를 몰아낼 것이다.

걷기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걷는 일은 독서와 춤의 중간쯤이 되리라. 노동도 아니지만 무위(無爲)도 아닌, 집중도 아니지만 방심도 아닌 그 중간쯤에 날 두고 하루 30분만이라도 목적 없이 내 다리로 북치듯 땅을 두드릴 것이다.

방금 책 읽다가 이런 시를 발견했다. 나나오 사카키라는 일본인이 썼다. ‘하루에 3킬로 40년 걸어서/사람은 지구를 일주한다//하루에 30킬로 36년 걸어서/사람은 달에 도착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모여 거대한 힘이 된다. 어려서부터 들은 말이지만 뜻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몇 달 전 불교철학 전공의 친구에게 간단한 도인법을 배웠다. 하도 시시해 효력이 의심났지만 믿어지면 해보고 안 믿기면 말라는 배짱이 미더워 어정어정 따라 해 보기로 했다. 그랬는데 두어 주 만에 침침하던 눈이 환해지고 무겁던 뒷머리가 가뿐해졌다. 동작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그냥 제자리에 서서 팔을 앞뒤로 흔드는 짓일 뿐이었다. 제 몸을 놀이 도구 삼아 흔드는 기쁨을 맛보며 흔들리는 팔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 어려운 건 매일같이 반복해야 한다는 바로 그 점일 뿐이었다.

새해 덕담 중 가장 흔한 게 ‘건강하라!’였다. 나 또한 습관처럼 건강하라고 말하곤 했다. 인생 최고의 가치가 건강은 아닐지라도 건강 없으면 모든 게 허사라는 데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토록 소중한 건강이 고작 팔을 흔들기만 하면, 그걸 꾸준히 반복하기만 하면 거뜬히 지켜진다는 건 만유인력 이상 가는 발견임에 틀림없다. 이건 무슨 신선술의 얘기가 아니다. 사소한 것을 오랫동안 반복하는 것의 힘에 관한 얘기일 뿐이다.

전에는 훌륭한 일과 훌륭한 사람이 저 높은 곳에 따로 있는 줄 알았다. 나이 들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위대함이란 사소함 속에서, 그 사소한 것의 진지한 반복 속에서 비로소 꺼내 들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세상 모든 훌륭함은 사소함을 반복한 결과다. 하루 두 시간 책 읽고 30분 춤추고 30분 걷는 일상, 내게 새해란 그걸 반복할 수 있는 365 묶음의 털실 뭉치다. 그 선물만 있으면 난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부자이고 위대하다! 나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그렇다는 거다. 그날 도인법 친구의 말을 나는 맘속으로 재빨리 복기해 뒀다. ‘아무리 사소해도 계속하는 것이 도(道)다.’ ‘지금 여기의 상황에 몰입하는 것이 도(道)다.’ 이게 올해 최상의 모토니 크리스마스쯤 나는 혹 우화등선(羽化登仙)하고 말는지도 모르겠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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