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성희]‘과잉처방’에 몸살 앓는 한국

  • 입력 2006년 1월 9일 03시 02분


‘하루 사과 하나가 의사를 멀리하게 한다’는 격언이 있다. 사과 하나에 담긴 비타민이 그만큼 건강에 좋다는 뜻이다. 그러나 ‘면역이론’을 설명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한다. 그들은 사과를 ‘하나’만 먹으니 의사가 필요 없는 것이지, ‘많이’ 먹으면 당장 배탈이 나서 의사에게 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적당하면 약, 넘치면 독이 되는 것은 비단 사과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유기체로 살아 움직이는 사회의 각종 병리 현상이나 모순에 대한 진단과 처방도 마찬가지이다. 증상에 비해 처방이 미약하면 낫기도 전에 저항력만 키우기 십상이며, 처방이 너무 세면 부작용이 생긴다.

20세기 들어 각종 정책 논쟁이 활발해지자 수사학자들은 더욱 효과적으로 논쟁하기 위한 각종 기법을 개발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적정 비용’의 문제다. 아무리 정책이 필요하고 훌륭해도 그것을 수행하는 비용이 너무 크면 정책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가령 주차 위반을 단속하는 데에 드는 인건비가 너무 많으면 주차 단속 요원을 고용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이 빛을 잃는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중대한 이유가 전제되지 않는 한, 고비용 정책의 제안자들은 저비용 대안 제시자를 당할 수가 없다. 바로 그 점을 물고 늘어져야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그들은 가르쳤다.

물론 그런 ‘비용의 논리’는 논쟁의 당사자들이 비용에 대한 전제를 공유할 때에만 통한다. 한쪽에서는 고비용 저효율은 좋지 않으므로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고비용이면 어떠냐’라고 나온다면 둘의 대화는 한 걸음도 진전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 개정 사립학교법 통과에 따른 진통부터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의 근원에는 새로운 정책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무지, 혹은 불감이 자리하고 있다. 일부 사학의 비리를 척결하는 데 사학법 개정이 과연 적절한 처방이었을까. 많은 사학재단의 반발이 심한 걸 보면 처방이 좀 과했던 모양이다.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는 데 행정수도 건설이 필요했나? 두 차례 헌법재판소에 제소되고 여야가 엎치락뒤치락한 걸 보면 처음부터 안성맞춤인 정책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잇단 정책으로 이렇게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걸 보면 과잉 처방임은 확실한데, 그 원인이 무지의 소치인지,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과잉 정책은 과잉 대응을 낳고, 그에 대한 진압 역시 과잉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의사소통의 과잉은 의견이 수렴되지 않고 제각각 목소리 내기에 바쁜 소위 ‘과다 민주주의’의 문제로 이어지기 쉽고, 각종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데 비해 의사소통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심각한 지체 현상을 일으킨다. 그러한 삶의 양식이 모아져 어느덧 우리 사회가 ‘오버하는 사회’가 되지는 않았는지 우려된다. 왜냐하면 그런 사회에서는 단순 감기에도 항생제를 처방하고, 줄기세포 기술에 핵심적인 부분인 여성의 난자 제공과 관련된 인권이라는 ‘비용’은 아랑곳 않는 과학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원외로 나가 투쟁하고, 농민들은 분신하며, 권력 중심과 주변부의 사람들이 도를 넘는 언행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도 있지만, 제각각인 명분과 달리 건강한 사회 유기체에 무리를 초래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사회적 비용에 대한 무지 혹은 무관심은 앞만 보고 달려온 개발 연대의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목하 어떤 강력한 진단 아래 우리 사회가 심한 체질 개선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긴장과 열병이라는 사회적 비용이 오롯이 국민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않는 처방은 병을 고치자고 몸을 망치는 행위나 다름없다. 설령 고강도 처방이 당장은 먹혀들어 ‘명의’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훗날 어떤 후유증을 동반할지 모를 일이다.

비용만 줄여도 최종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상식이다. 게다가 모든 유기체는 어느 정도의 자가 치유 능력이 있다. 이런 간단한 원리를 염두에 둔 정책이 아쉽다.

박성희 이화여대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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