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살 만한 地方’ 만들기

  • 입력 2006년 1월 9일 03시 02분


경기도 외국인 투자 사절단이 뜨면 이 지역 기업의 노조 간부도 바빠진다. 원정 시위가 아니라 투자 유치를 거들기 위해서다. 이화수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의장은 지난해 3월 세 번째로 손학규 지사의 미국 일본 유럽 출장에 동행했다.

‘한국은 노조가 너무 과격해서…’라며 투자를 꺼리는 외국 기업인들 앞에서 이 의장은 “노조도 외국인 투자를 원한다. 투자하면 최선을 다해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투자를 망설이던 오노 신이치 일본 알박 도호쿠(東北) 대표는 “이제 확신이 섰다”고 화답했다. 작년 11월 이 회사의 평택공장 준공식에서 손 지사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알박 4개사를 유치했다”며 “알박의 성공을 위해 머슴 일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각 시도의 외자 유치 경쟁은 우선 일자리 때문이다. 산업 입지가 좋은 경기도는 ‘질 좋은’ 일자리를 위해 원천기술이 있는 첨단 업체를 겨냥한다. 경기도가 올해 외자 유치로 늘리려는 일자리는 1만5000개다.

공장을 서울과 부산에 갖고 있던 식품회사 대상㈜은 증설의 어려움 때문에 2002년부터 경기나 충남을 염두에 두고 이전을 검토했다. 소문을 들은 고창수 전북도청 기업유치팀장 등은 이 회사를 찾아가 “군산에 투자해 달라”며 3년 동안 매달렸다. 도청은 대상㈜의 공장 이전 인허가를 5일 만에 마무리 짓고 용수와 폐수 문제도 해결했으며 100억 원의 이전 지원금도 주었다. 대상㈜은 군산으로 갔다.

전북은 교통과 물류가 취약한 산업 낙후지역이었다. 차별에 항의하며 중앙정부에 우는 소리를 해 특별 지원을 따내면 최선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기업과 공장 유치에 탄력이 붙은 전북이 ‘경쟁하려면 해 보자’며 다른 시도를 자극한다.

‘공장의 국내 이전은 부가가치를 새로 만들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이에 기업하기 좋은 여건이 조성돼 더 많은 기업 투자가 이뤄지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경쟁이 성장을 낳는다. 2016년까지 176개의 공기업을 지방으로 옮기면 13만3000개의 일자리가 ‘이전’될 것이라는 정부의 균형발전론과는 차원이 다르다.

제주도로 가 보자.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지만 작년에도 38만 명에 그쳐 내국인 464만 명의 10%도 안 됐다. 관광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렵다는 오랜 고민 끝에 제주는 과감한 자유화와 투자 유치로 ‘국제자유도시’를 만든다는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싱가포르, 홍콩, 암스테르담과 비슷하면서도 차별화된, 교통 통신 무역 금융의 중심이자 관광 휴양 도시라는 개념이다.

제주는 외국의 경쟁력 높은 교육 및 의료 시스템도 도입하려 했다. 자립형사립고와 영리의료법인도 포함돼 있었다. 정부는 이에 ‘공감’하고도 시민단체 등의 ‘형평’ 논리에 밀려 시행을 미루고 말았다. 제주는 7월이면 행정 체계가 대폭 개편되지만 특별자치도(道)의 소프트웨어인 자유나 자치는 부족한 어정쩡한 도시가 될 판이다.

전국 시도의 ‘사람 살 만한 지방 만들기’ 성공 사례는 복제되고 확산돼야 한다. 경쟁과 자치가 필수 요소다. 언제까지나 중앙정부가 차고앉아서 다 할 수는 없다. 제주는 제주답게 발전하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개정 사립학교법을 거부한 제주 사립고를 정부가 ‘진압’했다는 소식이다. 사학법을 떠나, 국제자유도시라는 아이디어가 아깝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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