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습권, 政權과 전교조가 먼저 흔들었다

  • 입력 2006년 1월 10일 03시 04분


정부와 여당이 한목소리로 학습권(學習權) 수호를 다짐하고 나섰다.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가 신입생 배정 거부 방침을 철회했지만 이해찬 국무총리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어떤 행위도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학생 학습권 수호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열린우리당은 국회 차원의 대책을 각각 내놓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학습권이 보호되고 신장돼야 한다는 데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전제 위에서, 그동안 정권이 학습권을 유린하고 방기(放棄)해 온 데 대해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학생의 학습권과 학부모의 자녀 교육권에 대한 헌법정신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기본법은 학습권에 대해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지닌다’고 명시했다. 학습자가 초중등학교 학생이라면 학부모가 학습권을 대행한다.

학부모의 ‘자녀 교육권’은 학생의 학습권과 함께 국가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다. 2000년 4월 헌법재판소가 과외교습 금지 법령에 위헌 결정을 내린 것도 부모의 교육권이 국가의 판단보다 우선한다는 헌법정신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헌재는 ‘학교 선택권’이 학부모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학습권을 광범위하고도 지속적으로 침해(侵害)해 온 쪽은 ‘정권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학생들의 능력차를 무시하고 학교 선택권을 박탈하는 고교평준화 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종렬 서울교대 교수는 서울대 BK21법학연구단과 공익인권법센터에서 펴낸 단행본 ‘고교평준화’에서 이 제도의 위헌성을 조목조목 열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고교평준화를 해체할 수 없다면 이를 보완하는 자립형사립고와 특수목적고라도 늘리는 것이 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정권은 자립형사립고의 시범실시를 연장하는 편법을 써 가며 추가 허용을 거부했다. 전교조는 평준화 틀 속에서의 개선책인 ‘학력(學力) 수준별 이동수업’까지 ‘불평등’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런 것이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학습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학습권에는 ‘교육에 관한 결정과정 참여권’도 포함된다고 김신일 서울대 교수는 지적한다. 이를 위해 학교운영위원회가 있다지만 학교에 대한 정보가 없는 학부모가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다. 선진국은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학교별 학업성과를 공개하는 데 반해 우리 교육인적자원부는 1급 비밀처럼 학교 정보를 감추고 있다. 덕분에 교사들은 ‘가르치는 능력’을 높이지 않고도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다. ‘가르치는 능력’을 높이기 위한 한 수단인 교원평가제를 전교조가 거부하는 것도 결국 ‘양질(良質)의 교육을 받을’ 학습권에 대한 침해다. 이는 학생과 학부모의 행복추구권을 훼손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이념교육 등을 통해 자신들의 편향된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 역시 ‘보편타당한 교육을 받을’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정권은 교육수요자가 원하지 않는 학교에서, 원하지 않는 교육을 받도록 강제하면서도 3불(3不·본고사 고교등급 기여입학 금지)정책이라는 규제로 대학의 학생선발권까지 빼앗았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돈희 민족사관고 교장은 “개정 사립학교법은 부당한 간섭을 제도화함으로써 학교에서 좋은 학습을 제공하기 어렵도록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정 정파의 ‘코드’나 보편성이 결여된 국가관을 달성하는 방편으로 이용됨으로써 학습자가 ‘지식과 사상의 자유를 누릴’ 학습권을 침해할 우려 또한 적지 않다.

개정 사학법은 학습권을 침해하는 다른 독소조항을 담고 있다. 현행법은 교사들의 정치운동과 노동운동을 금지하고 있으나 개정법 58조는 교원면직 사유에서 ‘노동운동’을 제외했다. 교사들이 학교를 ‘교육의 장’이 아닌 ‘노동운동의 장’으로도 이용할 수 있도록 사실상 허용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습권을 해칠 소지가 커졌다.

이처럼 학습권의 기본부터 흔든 정권이 이제 와서 사학들을 공격 목표로 삼아 학습권 수호를 외치니 앞뒤가 뒤바뀐 것이 아닌가. 정부와 여당, 전교조와 그 지지단체들이 학습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다. 차제에 정권과 전교조가 위협하는 학습권의 실체를 밝히고 교육의 근본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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