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상철]과학에 비약은 없다

  • 입력 2006년 1월 11일 03시 04분


지난해 말부터 이른바 ‘황우석 교수’ 사태로 온 국민이 가슴을 죄어 왔다. 사건을 고발한 언론에 대해 야속함을 표현하기도 하며, 온통 세상이 무너질 듯 걱정하기도 했다. 일반인만이 아니었다. 학계도 커다란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그러나 학계의 조사 결과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날조였다. 거짓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특히 아픈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꿈을 잃었다. 불치병이 말끔히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소망, 황우석이라는 커다란 영웅이 한국인으로서 세계무대에서 큰소리칠 수 있다는 자랑, 경제적으로도 국가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 등이 무너졌다. 서울대의 조사 결과 발표가 있고 난 지금까지도 황우석에게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엄청난 좌절과 상실감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또한 이를 통하여 생각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생명과학 연구의 진지함을 배웠으리라고 본다. 생명과학 대상 하나하나의 시료에 대한 엄정함, 진솔한 연구 결과에 대한 정직성, 연구 성과에 대한 공정한 분배, 과학의 정도를 가는 길, 그리고 학문의 단계적 발전 등에 대해 어떤 교육으로도 기대할 수 없었던 강한 각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사건을 반성하여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 학문적 논쟁이 학계에서 진지하게 진행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의 보완이다. 연구 기획, 추진, 성과, 발전에 대한 객관적 검증 체계를 정비하여야 한다.

둘째, 과학적 논쟁에 감성적 접근 또는 성급한 경제성 접근은 금물이다. 과학의 본질이 왜곡되는 엉뚱한 소모적인 논쟁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함이 확인됐다.

셋째, 과학자의 윤리적 덕목이 얼마나 소중한지가 크게 부각되었다. 연구의 정직성이 무너지면 학문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 거짓말하지 말고 연구 성과를 고루 분배하며 타인의 업적을 존중하는 학자로서의 덕목을 새삼 되새겨야 했다.

넷째, 학문 발전에 열린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주었다. 연구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연구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다섯째, 연구자의 책임 있는 태도가 중요함을 보여 주고 있다. 분명히 잘못되었는데, 눈만 가리고 아웅 하며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책임자가 일찍 진실을 고백했더라면 이렇게 소모적인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번 사건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배운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엄숙한 진실은 간단명료하다. 학문에 대한 좀 더 엄정한 자세를 연구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과학은 냉철하다. 연구자는 책임 있는 연구를 하여야 한다. 자신의 연구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인식해야 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또한 과학에 기대를 거는 국민에게도 요구하고 있다. 과학에 비약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성과는 단계적으로 성취된다. 차분하게 단계적으로 기초학문부터 확실하게 다져 나가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번 사건을 우리 학계와 사회의 기초를 학문적으로 단단하게, 또 윤리적으로 건강하게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소홀히 했을지 모를 윤리와 진리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압축성장에 어찌 성장통이 없겠는가. 이 아픈 통증을 잘 극복하고 나면 우리 사회는 더욱 늠름하게 성장하고 깊이 있게 성숙할 것이다.

박상철 서울대 의과대 교수·생화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