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부장이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의 ‘불안’이 중요한 이유인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인식과 판단에 대해 불안해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진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한다. 지난해 6월 ‘사실인정’에 관한 세미나에서 그는 “사실인정에 대해 자신 없어 하는 법관이 좀 안전한 법관이고 자신감과 확신에 찬 법관은 위험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자신과 확신은 위험한 결과를 낳기 쉽다. 미국 법정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제프리 스트리터 씨는 어느 날 법정 밖에 앉아 있다가 변호사의 부탁을 받고 법정 안으로 들어가 변호사 옆 피고인석에 앉았다. 변호사는 목격자들이 피고인(범인)을 제대로 식별하는지 시험하려고 그렇게 했다. 진짜 피고인은 법정의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법정에 들어온 세 명의 목격자는 모두 확신에 찬 어조로 피고인석에 앉은 스트리터 씨가 범인이 틀림없다고 증언했다. 스트리터 씨는 졸지에 유죄판결을 받고 구치소에 수감됐다. 로널드 허프 등의 저서 ‘오판(Convicted but Innocent)’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들은 사실 판단을 하는 배심원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감과 확신에 찬 증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증인일수록 사실 인식에 오류가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 Y 부장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참석했던 한 법심리학회 포럼에 대해 이야기했다. 심리학자인 J 박사가 참석자들에게 ‘농구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6명이 두 편으로 나뉘어 농구 경기를 하는 3분 길이의 동영상이었다. J 박사는 참석자들에게 “패스 횟수가 몇 번인지 세어 보라”고 말했다. 모두 열심히 세었다.
동영상이 끝난 뒤 J 박사는 뜻밖의 질문을 했다.
“화면에서 고릴라를 보신 분 있나요?”
30명 중 2명만이 보았다고 대답했다.
다시 동영상을 틀어 보았다. 1분쯤 지났을 때 큰 고릴라 가죽을 쓴 사람이 코트 한가운데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절대다수가 농구공에 정신이 팔려 농구공보다 10배 이상 큰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Y 부장은 이 실험을 겪고 난 뒤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절감했다고 말했다.
인간의 인식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은 인식 과정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고 알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알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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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자신의 인식과 판단은 확실하다고 믿는다.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바다라면 내가 아는 것은 그 바다에서 퍼 올린 한 움큼의 물방울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한 움큼의 물방울로 불안과 의심을 해소하려는 게 아닌지….
이수형 사회부 차장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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