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정호]과학의 정치화를 경계한다

  • 입력 2006년 1월 13일 03시 02분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여가 급팽창하고 있다. 과학기술부 장관은 부총리가 되었고, 과학기술혁신본부라는 조직이 새로 만들어졌다. 과학기술 예산도 매년 팽창해서 2006년에는 작년보다 15%나 늘어난 6조3000억 원이 되었다. 부진한 경제 성장을 정부 주도의 과학기술 투자로 만회하려는 태세다.

불행히도 정부가 과학에 투자해서 백성의 살림살이가 나아진 예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충족할 뿐인 연구 결과만 나온 경우도 있고, 성과 없이 돈이 사라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흔치는 않겠지만 돈을 받은 과학자의 주머니만 불린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한다. 한편 정부의 관점으로는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한 투자가 되기 십상이었다. ‘황우석 교수 사태’도 과학이 정치의 도구로 이용된 많은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경제 발전은 과학기술이 뛰어나거나 과학자가 많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나라든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이루어진 건 사유재산과 경제활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나라의 문이 활짝 열렸을 때였지, 과학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많았던 시기는 아니었다.

과거 소련만 해도 과학기술 수준은 대단했다. 대한민국은 2007년에 우주여행을 할 최초의 우주인 때문에 부산하지만, 소련은 이미 1961년에 유리 가가린을 지구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최초의 한국 우주인이 훈련받는 곳도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이고, 그가 타고 갈 우주선도 러시아제 소유스이다. 그렇게 대단한 과학기술이 있었지만, 러시아 국민의 살림살이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유럽의 과학기술 수준은 중국에 비해서 보잘것없었다. 그럼에도 산업혁명은 중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당시 활동한 라부아지에, 라플라스, 앙페르 등 대단한 과학자의 조국 프랑스가 아니라 제대로 된 대학이라고는 두 개밖에 없던 영국이 산업혁명의 진원지가 된 것이다. 나폴레옹이 ‘장사꾼의 나라’라고 얕잡아 볼 정도로 영국은 장사에 능한 나라였고, 그 기업가적 풍토가 과학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의 기술을 산업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런 사정은 현대에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의 경제가 가장 빨리 성장했던 시기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전혀 없던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였다. 이 두 나라에서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시작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인데, 영국의 생화학자이면서 과학경제사학자인 테런스 킬리 교수에 따르면 그것 때문에 경제가 발전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영국의 경우 오히려 마거릿 대처가 집권해서 과학기술 예산을 대폭 삭감한 이후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과학에 대한 정부 투자가 경제를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 성장의 결과 돈이 많아지자 정부가 과학기술에 돈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는 편이 오히려 맞을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의 공공재적 속성 때문에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기초과학은 바로 수익성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일단 기초과학이 확립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무임승차하기 때문에 누구도 선뜻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기초과학에 정부가 투자해서 상업화로 이어질 수 있는 연구 결과를 얻을 가능성 역시 매우 낮다. 획기적 발견과 발명은 필요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이것저것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이루어지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화공학과 조영일 교수의 말대로 과학에 대한 지원은 과학자들의 지적 유희를 도와주는 정도의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것을 위해 지금과 같이 방대한 조직과 예산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더욱 난센스다. 돈벌이가 되는 투자라면 기업은 정부 지원이 없어도 스스로 한다. 기업에서 세금을 거두어다가 그 돈으로 다시 생색내 가며 기업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기업이 내는 세금을 줄여 주는 것이 옳다. 기업은 과학기술이든 경영기법이든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알아서 개발한다.

정부 돈은 눈먼 돈일 때가 많아서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좋아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과학은 정치의 도구가 되고, 납세자는 골병이 든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