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산악회를 이끌다 정권을 잡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하산’ 길을 조심하라고 말하곤 했다. 전임자인 노태우 대통령을 겨냥해 “권력은 등산처럼 올라갈 때보다 내려가는 길에 사고가 많다”고 위협하며 자신을 후계자로 밀어 달라고 했다. YS는 후임인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5년은 순식간이다. 내려갈 때 다치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하곤 했다. 임기 말에 아들 현철 씨의 구속과 외환위기로 최악의 하산을 했던 자신의 뼈아픈 기억을 되씹으며 말한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을 돌파한 뒤인 재작년 5월 연세대에서 리더십 특강을 하면서 하산론을 폈다. “권력을 추구해 온 사람으로서 하산 길에 접어들고 있다. 내려갈 때가 오를 때보다 위험하다고들 한다. 정상의 경치에 미련 갖지 않겠다. 발목 삐지 않고 무사히 하산하고 싶다.” 그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 박수도 받았다.
▷열린우리당의 이부영 전 의장이 노 대통령의 ‘탈당’ 관련 발언에 실망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산마루에 올라 가장 하늘 가까이서 하늘의 뜻을 헤아려 본 이는 그저 겸손하게 하산 길을 재촉하는 모습이 미덥다.” 청와대 참모들이 탈당 소리를 말리는데도 작심한 듯 말하는 노 대통령에게 실망했다고도 한다. 노 대통령은 연세대 특강에서 “대통령은 준비되지 않은 말을 하기 어렵다. 불쑥 질문 받아 감정에 흔들려 대답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 말은 과연 실천되고 있는가. 준비된 말도, 준비되지 않은 말도 불안과 실망만 낳는 것 같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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