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의 大入통제가 빚은 ‘논술 공포’

  • 입력 2006년 1월 18일 03시 04분


대학입시의 논술시험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대는 올해 논술시험에서 지난해보다 두 배나 많은 7개의 제시문을 주고 ‘경쟁의 공정성’에 관한 글을 작성하도록 했다. 연세대는 4개 제시문만 내 주고 공통주제는 학생 스스로 찾아내 글을 쓰도록 하는 새 형식을 도입해 수험생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올해 논술시험에 인용된 학술서적과 문학작품 목록만 살펴보아도 너무 전문적이거나 낯선 작품이 적지 않아 평소 책을 많이 읽은 성인조차도 당혹스러울 정도다.

논술시험은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도록 유도하고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표현능력과 사고력을 키워 주기 위해 꼭 필요하다. TV 영화 등 영상매체에 익숙한 청소년들이라 대학과정을 이수하기 위한 기초 소양으로서 ‘책 읽기’의 중요성도 절실하다. 그러나 난해한 논술문제는 독서에 대한 거부감을 높여 오히려 책을 멀리하게 할 수 있다.

대입 논술이 난해해진 것은 정부의 대학입시 통제에 상당한 원인이 있다. 교육당국은 대입 본고사를 보면 안 되고 고등학교 간 학력차를 입시에 반영해서도 안 된다는 등의 ‘3불(不) 원칙’을 고집하며 대학들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어지문과 수리논술을 금지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논술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 제시했다. 대학들은 교육부가 정해 놓은 비좁은 틀 안에서 우수 학생을 가려내기 위해 논술시험의 난이도를 크게 높이고 있는 것이다.

교수들도 논술시험의 채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난이도와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전공이 다른 교수들이 채점을 부담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대학들은 무조건 어렵게 출제하는 것만이 능사인지 다시 따져 보아야 한다. 난이도를 높이지 않은 문제로도 많은 독서량과 창의적 사고를 지닌 학생들을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고 본다.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논술 비중이 높아지므로 난해한 논술시험에 따른 혼란도 더 커질 것이다. 논술시험이 본래의 취지대로 정착되려면 대학에 실질적인 학생선발권을 보장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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