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예산을 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직접 체험했다. 그들이 황우석 교수 사태에 분노와 허탈을 느끼는 것은 그래서 이해가 간다.
황 교수는 모든 비난을 자신에게 던지라고 했다. 그의 잘못이 크지만 모두 그의 몫은 아니라고 본다. 줄기세포를 홍보용 과학 이벤트로 채택한 현 정권의 과학기술정책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대의 최장집 교수는 황 교수 사태에 대해 “정부가 무언가 업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이 정부가 한국을 세계 생명공학의 중심으로 내세우고자 했던 과학정책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가 퇴행할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를 잘 드러내는 징후적 사건”이라고도 했다.
퇴행적인 모습은 소위 ‘황금박쥐’라는 모임의 존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황금박쥐’는 이미 알려진 대로 황 교수,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 박기영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이름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별칭이다. 모두 참여정부 내의 실세다.
정부 내에 여러 과학기술정책기구가 있는데도 굳이 사조직 비슷한 걸 만드는 이유는 뭘까. 황 교수가 거액의 연구자금을 받게 된 데는 이른바 ‘황금박쥐’의 역할이나 도움이 컸다는 증거일까.
이들 사이의 인연이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노무현 정권 출범 때 인수위에서 일했던 박 보좌관은 교수 시절 황 교수에게 2억5000만 원의 연구비를 받고 황 교수팀의 2004년 논문에는 공동저자가 된다. 박 보좌관은 재작년 이맘때쯤 대통령보좌관이라는 차관급 자리에 임명되고 이때부터 김 실장과 진 장관을 만나 모임을 이룬다. 황 교수팀의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실릴 즈음 노 대통령은 황 교수의 연구실을 찾는다.
황 교수가 참여정부의 실세들과 만나고 대통령이 연구실까지 찾아간 뒤부터 거액의 정부 예산이 지원되고 대기업들도 연구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 그저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바이오와 무관한 정통부가 정보통신진흥기금을 지원하고 SK그룹이 수십억 원의 거액을 내놓은 게 그런 사례다. 참여정부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비판했던 그런 일들이 아닌가.
황 교수 사태는 과학기술정책과 예산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묵묵히 일하는 과학자들이 이런 식의 예산 배정을 수긍할까. ‘황금박쥐’와 같은 네트워크의 뒷받침 없이 묵묵히 일하는 과학자들은 어떤 심정일까. 이공계 위기를 더 부채질할까 걱정이다.
혈세로 지출된 예산에 대한 검증이 소홀한 점도 지나칠 수 없다. ‘황금박쥐’의 후광 때문인지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면서도 1년에 한두 차례 보고에 그친 것은 직무 유기에 가깝다.
황 교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황금박쥐’는 첨단과학을 돕는 ‘천사’였다. 논문 조작이 밝혀진 이후 그들은 아무 말이 없다. 감사원이 조사를 한다지만 ‘황금박쥐’의 비밀은 제대로 밝혀질까.
과학기술 예산은 선진국 못지않은 규모로 늘어났다. 올해는 전체 예산의 5% 선인 9조 원에 이른다. 세계 7, 8위권에 드는 수준이다.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은 과연 이에 걸맞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 예산 편성과 집행의 비밀이 낱낱이 밝혀져야 과학기술자들은 분노와 허탈을 털고 다시 뛸 수 있을 것이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