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물에서 숭늉 마시는 ‘8·31대책’ 훈장 잔치

  • 입력 2006년 1월 19일 03시 22분


8·31 부동산 종합대책은 현 단계로서는 성공과 실패를 예측하기 어렵다. 예상되는 부작용이 심상치 않아 성공보다는 ‘예고된 실패’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런 판에 국무회의는 8·31대책을 수립한 공무원들에게 훈장을 주는 영예수여안을 통과시켰다. 우물에서 숭늉 마시는 기막힌 발상이다.

8·31대책 이후 일부 지역에서는 주택 거래가 급격히 줄어 이사하기가 힘들어졌다. 일터와 자녀학교 때문에 이사하려는 사람도 집이 팔리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른다. 종합부동산세에 해당하는 1가구 1주택자는 그냥 눌러앉자니 종부세가 걱정되고, 팔자니 양도소득세 부담이 만만찮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 다주택자는 세금 부담이 커서 팔지 못한다.

8·31대책은 요동치는 부동산시장을 잡기 위해 허겁지겁 성안된 데다 한나라당이 장외로 뛰쳐 나간 뒤 여당이 강행 처리하는 바람에 문제점을 보완할 기회를 놓쳤다. 소수의 투기꾼을 혼내 주려다가 선의(善意)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조항들이 그대로 남게 됐다. 예컨대 1주택자의 종부세와 양도세 부담은 크게 줄여야 한다.

부동산 시장이 지나치게 냉각되면 건설경기와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 전체에 주름살이 가게 된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금융 부실을 가속화하고 장기불황에 빠져들 수 있다. 이미 일본이 그런 대가를 치렀다.

정책 당국자는 8·31대책 이후의 시장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살펴보고 지나친 것은 풀고 모자란 것은 추가하는 제2, 제3의 보완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훈장 잔치를 벌이며 자화자찬(自畵自讚)의 샴페인이나 터뜨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설령 8·31대책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국민 세금으로 봉급 받는 공무원이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다. 부동산 대책을 주도한 재정경제부에서는 세제실장이 황조근정훈장을 받게 됐다. 평소 같으면 차관급이 받던 훈격(勳格)이다. 제 손으로 제 가슴에 훈장 달고 박수 치는 격이다.

행정자치부는 비판 여론이 생기자 포상자의 공적사항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직위에 넘치는 훈장을 받을 정도로 떳떳한 일을 했다면 구체적인 공적사항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을 주는 정부나 상을 받는 공무원이나 염치 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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