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국민중심당

  • 입력 2006년 1월 19일 03시 22분


한국 정치사에 명멸한 정당은 100개가 넘는다. 한민당 민국당 민주당 공화당 신민당 등 기억에 남는 당도 많고, 관보에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종이 정당’도 숱하다. 어떤 정당은 간판만 수차 바꿔 달기도 했다. “20년도 안 되는 정치 인생에, 나는 가만히 있는데 당이 네 번 바뀌었다. 외국 친구들이 만날 때마다 바뀐 명함을 보고는 놀란다.” 한나라당 강재섭 의원의 너스레다.

▷전두환 정권 때의 여당인 민정당은 노태우 정권기에 민자당으로, 또 김영삼 정권기에 신한국당으로 변신했다. 그러다 9년 전 이회창 대통령후보를 중심으로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이처럼 정권과 인물 중심으로 가건물 짓고 간판 갈듯 해 온 것이 정당사다. 그 간판에다 자유 민주 공화 통일 민족 민권 신민(新民) 평화 정의 한국 국민 같은 그럴듯한 단어를 골라 쓰다 보니 나중엔 어휘가 동나 버렸다.

▷새 정당을 만들려 해도 죽은 당명을 살리지 않는 한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민련 미래연합 같은 무슨 ‘연합’이거나 새정치국민회의나 국민통합21 같은 대안 당명이다. 그마저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자 열린우리당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러나 성공작은 아닌 듯싶다. “열우당은 비아냥 같다. ‘우리당’으로 불러 달라”고 하소연해 왔지만 누구나 순진하게 따르지는 않는다. 오죽하면 당 홈페이지에 ‘당명 바로잡기 신고센터’까지 두고 ‘열우당’ 박멸에 나섰을까. 문제는 이름 탓이 아니라 정치의 내용 탓이련만.

▷심대평 충남도지사와 이인제 의원 등 충청권 정치인들이 ‘국민중심당’을 발진했다. ‘국민’이 남용되니 ‘중심’을 붙여 차별화를 꾀하려는 듯하다. “판을 뒤엎으려는 급진 개혁은 진보가 아니다. 기득권에 집착하는 수구는 보수가 아니다. 합리적 보수와 온건한 진보를 지향한다.” 첫 삽의 변(辨)치고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정치가 말대로 되던가. 행여 ‘충청중심당’이 돼 지방선거에나 대응하고 정국의 ‘캐스팅보트’나 쥐겠다는 발상이라면 ‘국민바깥당’으로 불리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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