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명]브로커에게 씹힐까 걱정했다니

  • 입력 2006년 1월 19일 03시 22분


“씹힐까 봐 걱정했다.”

경찰청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최광식(崔光植) 경찰청 차장은 18일 브로커 윤상림(54·구속 기소) 씨와의 돈거래 사실이 알려진 뒤 “윤 씨와의 관계를 왜 끊지 못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최 차장은 “윤 씨가 과장이 심한 데다 남을 험담하는 일도 잦아 경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7, 8년 동안 두세 달에 한 번씩 식사를 하고 자주 통화를 할 정도로 친분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까이하지도, 내치지도 않았다”면서 “윤 씨를 내쳤다가 ‘씹힌’ 사람이 많았다”고도 했다.

이날 오후 한 경찰 간부는 기자에게 똑같은 얘기를 전했다. 윤 씨가 어느 날 자신을 찾아와 “꼭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는 것. 이 간부는 단칼에 거절하면 ‘씹힐까 봐’ 걱정이 돼 “정말 식사를 하고 싶은데 오후에 급한 회의가 있다”며 아쉽다는 기색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는 것이다.

그는 “윗사람과 가까운 윤 씨가 그 사람을 찾아가 내가 윗사람을 욕하고 다닌다고 한마디 하면 그걸로 조직에서 매장되는데 어떻게 윤 씨의 눈치를 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시위 농민 사망사건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말 허준영(許准榮) 경찰청장이 물러난 뒤 경찰은 흔들리는 기강을 잡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한 경찰 간부는 명예의 상징인 경찰관 정모(正帽)를, 또 다른 경찰관은 일선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담은 자신의 책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을 악용해 마약 사범에게서 돈을 받는 경찰관, 피의자를 폭행하거나 단속 정보를 흘려 주다 덜미가 잡힌 경찰관의 모습은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경찰에 기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제 역할을 하려면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브로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경찰 수뇌부의 슬픈 자화상, 경찰관의 돌출 행동, 흐트러진 근무 기강…. 이 모든 게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수뇌부부터 마음을 다잡고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이재명 사회부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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