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카페]지면 죽는다

  • 입력 2006년 1월 24일 03시 10분


별명이 ‘검투사’인 황영기 우리은행장이 새해 선물로 52개 지역 영업본부장들에게 ‘칼’을 돌려 은행권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황 행장이 선물한 것은 지휘봉입니다. 손잡이 끝을 돌리면 지휘봉 안에 단검이 들어 있습니다.

칼이 든 지휘봉을 선물했는데 ‘칼을 선물했다’고 소문이 난 것은 황 행장의 별명과 무관치 않습니다.

그의 별명 ‘검투사’는 삼성증권 사장 시절 “최고경영자는 글래디에이터(검투사)다. 지면 죽는다”는 말을 자주 해서 붙여진 겁니다.

일선 영업 현장을 지휘하는 ‘지역 사령관’에 해당하는 영업본부장들에게 칼을 선물한 것은 ‘죽기를 각오해야 올해 영업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황 행장은 올해 목표로 자산 30조 원 늘리기, 지점 100개 추가 설립 등을 제시했습니다.

1년에 지점 100개를 설립하려면 토요일, 일요일, 휴일을 빼면 이틀에 1개꼴로 지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산을 30조 원 늘리려면 영업일 하루마다 1200억 원씩 늘려야 합니다.

이처럼 다소 무리해 보이는 영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역 영업본부장들을 더욱 독려해야 한다고 황 행장은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응은 괜찮은 편이어서 칼이 든 지휘봉을 받은 영업본부장들은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수도권의 한 영업본부장은 “경쟁에서 패배하면 자결하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출근한다”며 “이런 기세로 밀어붙이면 곧 1등 은행 자리를 탈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공격 앞으로’를 외치는 황 행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우리은행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의 한 임원은 “자산을 빨리, 그것도 많이 늘리려면 대출영업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데 대출 증가가 자칫 부실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은행은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안정과 수익성이 우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황 행장의 공격적인 행보가 고객 서비스를 강화하고 금융권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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