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비디오카메라가 세상에 등장하기도 전인 1963년 독일에서 ‘음악의 전시-전자텔레비전’ 개인전을 열어 비디오 예술을 창시한 디지털 아트의 시조(始祖)였다. 1984년 1월 1일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된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선도한 혁신의 예술가이기도 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때 ‘바이바이 키플링’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세계는 하나’ 등의 인공위성 쇼를 펼쳐 각별한 조국애도 보여 주었다.
백남준의 예술철학은 ‘예술은 사기(詐欺)’라는 그의 말처럼 충격적이고 전복(顚覆)적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발상과 소재로 기존 권위와 가치를 공격했지만 그의 예술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다. 그는 “기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예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로 전락한다”며 ‘인간화한 기술’ ‘인간화한 예술’을 추구했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 역시 인간을 위한 장치로 쓰여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지금도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시대정신이다.
백남준이 7년 전 “한국에서는 말을 앞세우는 국수적인 애국자가 늘 이기는 것 같다”고 한 발언은 오늘의 한국을 예언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토론문화가 성숙하지 못하면 적대적인 문화만 양극화한다”고 우려했다. 이제는 백남준이 우리에게 남긴 기마민족의 과제를 풀어 가야 할 때다. 예술에 대한 욕망이 지나쳐 신(神)이 뇌중풍을 주었다고 했던 백남준. 그 예술혼(魂)을 기리며 고인(故人)의 명복을 빈다.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