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출사표는 출마 선언을 일컫는 말이 됐다. 선거도 일종의 전쟁이기 때문일 것이다.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이 출사표를 냈다. 광역자치단체장에서 기초의회 의원까지 모두 3808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는 줄잡아 2만4000여 명이 나설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출사표가 쏟아질 것이다. 평균 6 대 1이다. 이달 18일에 있을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에도 이미 8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냈다.
▷그들의 출사표는 의욕으로 넘친다. “대한민국을 땀으로 적시겠다” “죽어 가는 지역경제를 다시 일으키겠다” “당을 살려 내겠다”….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자신만이 위기에 빠진 나라와 지역을 살릴 재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면면을 보면 그만한 능력과 자질이 있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한다. 격(格)과 급(級)을 따지지 않고 선거라면 일단 출마부터 하고 보는 사람, 이당 저당 옮겨 다닌 사람, 심지어는 파렴치범 전력(前歷)을 가진 사람도 있다. 출사표는 아름다우나 행적(行蹟)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사람이 벼슬을 추구하는 동기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 자리가 주는 영광과 이득에 더 관심을 갖는 ‘지위 지향형’과 자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일의 성취에 관심을 갖는 ‘과업 지향형’이 그것이다. 무한 경쟁의 세계화 속에서 정말 필요한 인재는 후자일 것이다. 출사표를 냈거나 낼 사람은 약 1800년 전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읽어 보고 무엇이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길인지 되새겨 볼 일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