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가 제시한 숫자들은 ‘노곤층(노무현 빈곤층)’이라는 신조어(新造語)에 담긴 우리 경제의 객관적 실상이다. 이런 현실을 낳은 원인과 처방에 대한 이 대표의 진단은 큰 틀에서 옳다. 그의 말대로 국가부채가 279조 원으로 늘어나 갓 태어난 아이가 650만 원의 빚을 지는 판인데도 노 정권은 증세와 공무원 늘리기에 매달리고 있다. “3년간 늘어난 공무원 4만 명의 인건비 4조 원이면 12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이 대표의 지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여권의 상황 인식은 안이하고 무책임하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그제 국회 대표연설에서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그 원인을 주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여파와 땀 흘리지 않고 부(富)를 불려 가는 사람들 등 ‘네 탓’으로 돌렸다. 큰 정부의 비효율과 분배 우선의 경제정책, ‘세금폭탄’ 식 조세정책의 잘못 등 ‘내 탓’은 실종됐다.
정동영 당의장의 행보도 실망스럽다. 그는 2004년 당의장으로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상생(相生)정치 협약’을 맺었던 사실조차 잊은 듯 다시 당의장이 되자마자 한나라당을 ‘공공의 적(敵)’ ‘부자와 특권층만을 위한 정당’으로 몰아붙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그런 한나라당에 대연정(大聯政)을 하자고 졸랐던 것인가. 정 의장은 대구(大邱)를 박정희와 동일시하는 듯이 “대구는 어두운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까지 했다.
여권은 5·31 지방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에만 급급한 듯하다. 청와대가 또다시 현직 장관들을 징발해 지방선거에 내보내려는 것에서도 국정운영의 책임감은 읽을 수 없다.
한나라당의 이 대표는 어제 연설에서 “양극화에 대한 모든 책임을 노 대통령과 청와대에 떠넘길 생각은 없다”며 야당의 공동책임을 인정했다. 그는 “우리가 때론 색깔론을 제기하고 공세를 취한 적은 없는지 자성(自省)하고 있다”면서 “2년밖에 안 남은 정부가 임기를 훌륭하게 마치려면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고 국회에서도 싸움을 걸지 말라”고 당부했다.
여야가 뒤바뀐 듯한 모습이다. 여권은 이제라도 적대(敵對)에서 벗어나 상생의 정치로 돌아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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