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개인 차원의 부주의’라고 했지만 그런 식으로 덮을 일이 아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와대는 문제의 행정관에게 고의성은 없었다고 했지만 이 행정관은 문건을 직접 들고 나가 서울 시내 한 모텔에서 최 의원에게 보여 줬다. 의도 없이는 하기 힘든 행동이다.
이 행정관은 외무고시 출신으로 지난 대선 이후 노무현 대통령 주변 인물들과 인연을 맺어 왔으며 평소 대미(對美)외교가 편중외교라고 비판해 왔다고 한다. 이 점에서 청와대 내의 386세대 참모들과 뜻이 맞았고, 이런 성향이 문건 유출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청와대와 외교부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그렇다면 결국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정부의 입장 변화에 불만을 품고 행동으로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주파와 친미파의 갈등설이 사실이었던 셈이다.
이 행정관에게 처음 문건을 넘겨준 대통령 부속실의 행정관도 마찬가지다. 주로 대통령의 개인 용무를 담당하는 그가 무슨 이유로 NSC 문건을 소지하고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 역시 전략적 유연성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문건을 입수했다가 넘겨준 것은 아닌가.
역대 어떤 정권에서도 외교·안보 문제를 놓고 청와대 안에서 이런 일이 빚어진 적은 없다. ‘하극상’을 떠올릴 정도다. 설익은 ‘자주론’의 대가로 넘기기에는 심각한 상황임을 대통령부터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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