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한국 육상의 봄날 오려나

  • 입력 2006년 3월 8일 03시 05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획득 이후 한국 마라톤을 이끌어 온 ‘국민마라토너’ 이봉주(삼성전자)가 은퇴의 기로에 섰다. 최근 하락세에 들어 2004 아테네 올림픽 14위(2시간 15분 33초), 2005 베를린 마라톤 11위(2시간 12분 19초)에 이어 5일 열린 비와코 마라톤에선 32km 지점에서 기권해 “더 뛰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봉주의 쇠락은 한국 육상의 퇴보를 의미한다. 이봉주가 상승세에 있던 1997년 삼성중공업이 한국전력의 뒤를 이어 대한육상경기연맹을 맡았다. 2005년부터는 삼성전자가 맡고 있다. 초일류기업 삼성 출신이 회장을 맡고 있지만 기대와 달리 한국 마라톤은 물론 육상 전체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삼성은 한국전력 시절과 비슷하게 매년 연맹 인력운영비로 10억 원 정도만을 투자하는 등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단거리와 도약 유망주들은 축구나 농구 배구로 뺏겼고, 100명이 넘던 마라톤 엘리트 선수도 60여 명으로 줄었다.

2000년 삼성전자마라톤팀이 창단되자 연맹은 삼성에 끌려 다니는 행정을 펼쳤다. 연맹은 2000년부터 마라톤 대표 선발전을 국내 대회에서 해외 대회로 확대했다. 이봉주는 ‘삼성전자’란 간판을 달고 보스턴 런던 베를린 등 해외 마라톤을 누볐다. 한국 육상엔 이봉주밖에 없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큰 ‘홍보 효과’를 누린 반면 국내 엘리트 마라톤은 시들어 갔다. 연맹은 마라톤 유망주들을 삼성전자가 사실상 싹쓸이하는 것도 좌시했다. 뜻있는 육상인들은 “삼성 때문에 한국 육상이 다 죽는다. 누가 맡아도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지난해 연맹을 맡은 신필렬 회장은 7일 취임 1년을 맞아 뒤늦게 한국 육상 발전책을 내놓았다. 남자 마라톤 및 남자 100m에서는 한국 신기록에 1억 원(종전 500만 원), 세계 기록에 10억 원(종전 1억 원)을 주겠다고 포상금을 대폭 올린 게 골자. 신 회장은 “삼성그룹을 설득해 육상에 전폭 투자하기로 했다. 앞으론 다를 것”이라고 장담했다. 신 회장은 “육상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연맹과 삼성이 변화의 조짐을 보인 것만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늦은 것을 만회하는 유일한 방법은 말한 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양종구 스포츠 레저부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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