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배우 김명곤의 공익근무

  • 입력 2006년 3월 8일 03시 05분


배우 김명곤 씨가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에 내정되자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문화예술인에게 문화부 장관직을 맡기는 것에 경계심을 가질 필요도 있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문화예술인이 정치 바람에 휩쓸려 장관 역할도 잘 해내지 못하고 문화계로서도 소중한 인재를 놓치는 결과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의 경우는 참여정부에서 먼저 문화부 장관을 했던 영화감독 출신의 이창동 씨를 떠올리게 한다. 이 씨는 2004년 6월 장관직을 물러난 뒤 2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두문불출이다. 지난해 10월 부산영화제가 마련한 ‘관객과의 대화’에 얼굴을 잠깐 비쳤을 뿐이다.

이 씨는 부산영화제에 참석해 “장관을 그만둔 뒤 소설을 쓰다 중단하고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그 후 별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아직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태인 것 같다. 장관에 취임한 직후 캐주얼 차림으로 싼타페를 손수 몰고 문화부 청사 앞마당에 나타나서 장관을 떠받드는 공무원들을 향해 ‘조폭문화’라고 일갈하던 그 패기는 그대로일까.

이 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문화계 인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기용한 것은 ‘코드 인사’였다. 하지만 장관 자리에 오르자마자 문화 얘기가 아닌 ‘홍보지침’을 꺼내 들고 나온 것은 의외였다. 홍보지침이란 기자실을 없애고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한 것이다.

어설픈 코미디였다. 뉴스가 별로 없는 문화부는 기자들이 상주하는 출입처가 아니다. 홍보지침을 시행하고 말 것도 없는 것이다. 이 씨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문화부의 취재 상황은 기자실이 브리핑 룸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한적했던 이전으로 돌아갔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그는 비판 언론에 적대적인 정권의 언론정책을 옹호했다. 문화부 업무에 언론 관련 업무가 포함된 것이 화근이었다. 물러나는 것도 매끄럽지 못했다.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으로부터 지역구 출마를 요구받았으나 거부한 뒤 교체된 것이다. 정작 문화와 관련된 일은 그가 막바지에 발표한 ‘문화비전’ ‘새 예술정책’ 정도였으나 곧바로 교체돼 힘을 잃고 말았다.

그나마 출마를 거부하며 정치와 단절한 것은 본인이나 문화계를 위해 다행이다. 문성근, 명계남 씨 같은 대통령 주변 문화계 인사들이 어지러운 정치적 언행으로 문화의 이미지를 해친 사례도 있지 않은가.

스타 감독 출신인 이 씨 못지않게 김 내정자도 문화계에 비중 있는 인사다. 영화 ‘왕의 남자’의 대히트로 전통예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는 이미 1980년대에 전통예술을 현대연극에 접목한 사람이다. 국립극장장으로 6년간 극장 경영을 했지만 그는 역시 광대이고 배우다.

그의 앞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당장 스크린쿼터 문제가 앞에 있고 언론정책과 관련해서도 KBS 사장과 방송위원 선임이라는 ‘지각변동’이 기다리고 있다. 방송위원 전원이 5월에 임기가 끝나고, KBS 사장은 6월에 임기가 만료되므로 새 인물을 뽑는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은 불가피하다. 문화부 장관은 이들에 대한 임명 권한이 없지만 언론 관련 부처의 장이므로 정치적 파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위헌 소지가 큰 신문법과 관련된 업무는 그가 직접 다뤄야 할 과제다.

이 전 장관은 장관 생활을 ‘공익근무’라고 표현했다. 공익근무요원을 빗댄 말이다. 하지만 그의 역할이 얼마나 공익에 부합했을까. 사람들이 문화예술인 출신의 문화부 장관을 반기는 것은 문화 분야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문화를 잘 아는 장관이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많은 사람에게 문화의 혜택이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공익근무라면 문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공익근무일 것이다.

이 씨가 먼저 간 길을 살펴볼 수 있는 김 내정자는 훨씬 유리하다. 그의 공익근무가 본인의 상처로, 문화계의 손실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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