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11>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1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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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전에 대왕께서 이미 가르치신 바 있다고 들었는데, 네 어찌도 그리 말귀가 어두우냐? 대왕께서 이르시기를, 너를 죽이는 일이라면 감옥 대신 군역(軍役)을 치르는 죄수(형여죄인·刑餘罪人) 하나만 해도 된다 하셨다. 그런데 대왕께서 무엇 때문에 너와 싸우자고 전서(戰書)까지 내겠느냐? 이는 모두 대장군인 내가 너를 머리 없는 귀신으로 만들기 위해 꾸민 일이다. 그러니 여기 없는 우리 대왕을 내놓으라고 떼쓰지 말고, 네 어깨 위에 남아 있어 봤자 세상만 시끄러워지는 그 머리나 내놓아라!”

그러자 참고 참던 패왕도 더는 그냥 있지 못했다. 불이 철철 흐르는 듯한 눈길로 한신을 노려보며 무섭게 소리쳤다.

“내 오늘 너를 사로잡아 그 간사한 혀를 뽑지 못하면 천하의 항우도 패왕도 아니다!”

그러고는 안장에서 긴 철극(鐵戟)을 뽑아 꼬나들며 좌우를 돌아보고 소리쳤다.

“저 천한 종놈에게 속지 말라. 틀림없이 유방은 저 안에 있다. 나를 따르라. 오늘은 반드시 유방을 잡아 죽이고 서초의 천하를 되찾자!”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마치 빈들을 울리는 천둥소리 같았다. 그러자 한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문(陣門) 안으로 들고, 대신 관영의 기마대와 조참의 보갑대(步甲隊)가 두껍게 진 앞을 막아섰다. 여러 해 별동대(別動隊)로 격전을 치르고 떠돌면서 단련된 한군의 정예였다. 거기다가 이미 진성 아래의 싸움에서 패왕에게 처음으로 패배의 쓴맛을 보여 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패왕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군사를 휘몰아 한신의 전군(前軍)을 덮쳐 갔다. 가려 뽑은 정병을 커다란 도끼로 삼고 스스로 그 도끼의 날이 되어 가로막는 적군을 단숨에 쪼개놓고 보는 전법이었다. 그런 다음 패왕은 양 날개를 펼치듯 좌우로 군사를 내어 적의 대군을 가로세로 토막 내고, 쫓기는 짐승 몰듯 짓밟아 버리는 것으로 싸움을 마무리했다.

패왕의 그와 같은 전법은 군사적 책략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의 개인적인 무용(武勇)과 패기((패,백)氣)에 의지한 전투력 또는 돌파력에 가까웠다. 어지러운 시대의 유민군(流民軍)이나 망해 가는 나라가 급조한 토벌대를 상대로 싸울 때는 위력이 있었으나, 체제와 규율을 갖추고 잘 조련된 정규군을 만나면 돌이키기 어려운 난국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 첫 경험이 지난번 진성 아래에서의 싸움이었다.

거기다가 패왕이 헤아리지 않고 있는 것은 자신이 같은 전법을 되풀이해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혜로운 장수는 같은 적과 두 번 싸우는 것도 피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패왕은 한군이나 한왕을 돕는 제후의 군사들과 수십 번이나 싸우면서 줄곧 집중과 충격, 그리고 속도를 위주로 한 그 방식으로 상대를 이겨 왔다.

하지만 해하의 싸움에서 초군을 더욱 참담한 수렁으로 밀어 넣은 것은 그 전투에 뛰어드는 패왕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때 패왕에게 필요했던 것은 장수(장水)를 건널 때 보여 주었던 불귀(不歸)의 각오 또는 거록(鉅鹿)의 혈전을 치를 때 초군을 이끌었던 필사(必死)의 결의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패왕은 아직 함곡관을 깨뜨릴 때의 득의, 수수(휴水)에서 이겼을 때의 자부와 자만에 차 있었다. 따라서 일이 잘못되었을 때를 위한 배려와 조처가 없었고, 그렇다고 그대로 싸우다 죽을 채비가 되어 있지도 않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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