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정부,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변화에 둔감하다. 그제 취임한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출자총액 제한제도에 대해 “대기업의 순환출자를 막는 가장 효율적인 제도인지 의문”이라며 일단 제도의 문제점은 인정했다. 대기업의 계열사 투자를 순자산의 25%로 제한하는 이 제도는 핵심적인 재벌 규제 수단이다. 대기업들은 이 제도에 대해 “투자를 제한하는 장애물이며 경영권 방어도 어렵게 한다”고 반발해 왔고 전문가들도 “국내 기업에만 적용되는 역차별적 과잉 규제”라고 지적한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박승 한국은행 총재도 폐지론에 가세했다. 그럼에도 권 위원장은 “대안이 없으니 일단 그냥 가자”고 한다.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일단 그냥 내버려 두자는’ 것은 무능이다.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금지하는 ‘금산(金産)분리’도 마찬가지다. 재벌이 계열금융기관을 사금고(私金庫)처럼 이용하지 못하도록 이 원칙을 도입했지만 지금은 다른 감시 장치가 작동하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를 꺼리는 시중은행장들조차 어제 “이 원칙을 폐지하더라도 우려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출총제와 금산분리 고집이 능사(能事)가 아님은 분명해졌다. 그런데도 ‘비뚤어진 반(反)재벌 코드’와 ‘정의로운 정책이라는 허위의식’이 정부의 발목을 잡는 모양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현정택 원장은 “최근 한국은 성장 둔화와 분배 악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기현상을 겪고 있다”며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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