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과 선물은 구분이 모호하다. ‘직권(職權)을 이용해 특별한 편의를 봐달라고 건넨 부정한 금품’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호감의 표시’인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전후 관계를 따져 보면 금세 감(感)이 잡히지만 법적으로는 까다로운 문제다. 대가성(代價性)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물이 ‘정치자금’이나 ‘떡값’으로 둔갑한 경우도 많다. 하긴 뇌물을 뜻하는 영어 브라이브(bribe)에 애초 선물의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강봉균(열린우리당 의원)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 김대중 정부 시절의 경제정책 실세(實勢)들이 금융브로커 김재록 씨와 함께 2000년 9월 부부 동반으로 호주 시드니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아더앤더슨코리아 부회장이던 김 씨 측이 여행 경비는 물론이고 올림픽 참관 티켓까지 제공했다고 한다. 김 씨는 DJ 정부가 주도한 기업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거의 싹쓸이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사람이다.
▷이 전 부총리와 강 의원은 시드니 여행 당시 공직(公職)의 현역은 아니었다. 두 사람 다 재경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였다. 강 의원은 이를 근거로 “로비를 받을 위치가 아니었다”고 펄쩍 뛰는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딸이 김 씨 회사에 취업했던 일을 두고도 스카우트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재등장 가능성이 예상되던 인물이었다. 특히 이 전 부총리는 ‘이헌재 사단’이라는 말을 낳은 당사자이다. 우리나라 경제관료 조직은 ‘현역과 퇴역’ 사이의 상호보험 관계가 특징이라는 것을 김 씨가 몰랐을 리 없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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