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만우]외국계 펀드, 경영 참여땐 세금징수 가능

  • 입력 2006년 4월 14일 03시 00분


칼 아이칸 연합의 주역인 스틸파트너스의 워런 리히텐슈타인 대표가 KT&G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KT&G는 담배사업권,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 주식, 과거 전매 지서였던 지점 용지가 주요 재산이다. KT&G는 금연 운동 확산으로 담배 부문의 사업 확장이 어려워지자 인삼 제품을 생명공학과 접목한 신규 사업과 부동산 개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아이칸 연합은 주주가치를 들먹이며 인삼공사, 부동산, 주식을 주주들이 직접 처분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경영은 기업의 성장동력을 팔아서 당장 돈을 챙기자는 것으로, 고용과 성장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가치는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공시 자료에 따르면 KT&G는 분과위원회를 포함한 이사회를 연간 40회 이상 개최하고 있다. 상장회사 사외이사는 회사와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세법상 근로소득인 보수를 받는다. 외국계 펀드라도 책임자가 사외이사로 선임돼 고용계약을 하고 상시 경영에 참여한다면 한국에 고정사업장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정사업장(permanent establishment)이란 실질적 경영의 장소로 ‘지속적 경영관계’가 더 정확한 번역이다. 한국이 미국, 벨기에 등의 국가와 맺은 조세조약에 따르면 고정사업장을 갖게 될 경우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권은 원천지국에 귀속된다.

아이칸 연합의 주주 제안으로 사외이사에 선임된 리히텐슈타인 대표가 한국에서 가장 활발한 KT&G 이사회의 구성원이 됐으니 이사의 충실 의무를 해태하지 않는 한 한국 내에서 ‘지속적 경영관계’를 맺는 것이고, 따라서 스틸파트너스가 주식을 처분할 때 발생하는 차익은 한국에서 법인세를 내야 한다. 한미조세조약에도 외국계 펀드 명의의 계약체결권을 가지면서 한국 내에서 같은 권한을 정규적으로 행사하는 대리인을 두면 고정사업장이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국 내에 거주하면서 한국 기업의 주식을 단순 투자 목적으로 취득하여 차익을 얻었다면 당해 외국인투자가의 거주지국에서 세금을 내게 된다. 그러나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같이 책임자들이 장기간 한국에 주재하면서 업무를 조율하는 사무소를 두고 정부와 은행 관계자들을 상대로 집요한 로비 활동을 벌였고, 이들이 사외이사로 선임돼 경영을 주도했다면 과세권은 당연히 한국에 귀속돼야 한다.

론스타 어드바이저의 한국 책임자(country manager)로 공시 서류에 밝힌 스티븐 리 씨는 2003년 9월 16일부터 2년 이상 외환은행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으로 재임하다가 스타타워빌딩 주식 매각에 대한 세무 문제가 불거지자 2005년 9월 27일자로 전격 사임했다. SK㈜와의 경영권 싸움에서 한승수, 조동성 씨 같은 한국인 저명인사를 대신 내세웠던 소버린과는 달리 론스타는 스티븐 리, 유회원 씨 등 론스타 책임자 4인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스티븐 리 씨는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보낸 서한 등에서 고정사업장으로 간주되는 대리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론스타가 내부 인사로 사외이사를 선임한 것에는 퇴임하는 한국인 임원들의 후안무치한 행동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당시 외환은행 사외이사들은 은행이 망해 간다며 할인가액으로 경영권을 넘기면서도 주가가 올라야만 가치가 있는 스톡옵션을 챙기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였다. 스톡옵션은 주가가 미리 정한 행사 가액에 미달하면 휴지 조각이 된다는 점에서 임원들의 행위에는 배임 소지가 엿보인다.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인수 당시의 불법 행위들이 주식 매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현재로는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국제 조세 규범상 고정사업장에 해당된다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

주식 매각차익을 챙긴 외국계 펀드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철수할 경우 사후에 부과하더라도 제대로 받기 어렵다.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을 신속히 개정해 매각 대금에서 원천징수할 길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국세징수법 제24조 규정에 의해서도 국세를 포탈하고자 하는 행위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국세로 확정되리라고 추정되는 금액의 한도 안에서 주식 매각 대금을 압류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 한국세무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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