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uttable presumption’이라는 말도 비슷하다. ‘presumption(추정)’이라는 말 자체에 ‘반박이 가능한(rebuttable)’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rebuttable’은 불필요한 군더더기다. 미국 법률용어에는 이런 게 수없이 많다.
왜 이처럼 불필요한 반복이 많을까. 설득력 있는 분석 중의 하나가 ‘변호사 수입’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변호사의 수입은 의뢰인에게 써 주는 법률문서의 양(단어의 수)에 비례하기 때문에 같은 용어라도 단어 수를 늘려서 길게 써야 돈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법률용어 사전에 나오는 얘기다.
올해 미국 로펌(법률회사) 업계의 가장 큰 뉴스는 초임 변호사의 임금 인상이다. 대형 로펌이 인재 영입 경쟁에 나서면서 초임 변호사의 연봉이 크게 높아졌다. 대형 로펌인 ‘심슨 대처 앤드 밸릿’은 초임 변호사의 연봉을 지난해 12만5000달러(약 1억2000만 원)에서 14만5000달러로 인상했다. 로펌 랭킹 100위 이내의 다른 대형 로펌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올렸다.
초임 변호사 보수가 올라감에 따라 기존 변호사들의 보수도 올랐다. 대형 로펌의 5년 경력 변호사는 17만 달러, 10년차 변호사는 2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다.
미국의 웬만한 로펌은 적게는 100명, 많은 곳은 1000명 이상의 변호사를 두고 있다. 이들을 먹여 살리려면 천문학적인 규모의 법률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aid and abet’이 아니라 ‘aid and abet and help’로 법률용어를 더 길게 늘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변호사들은 이처럼 많은 연봉을 받지만 생활은 생각만큼 윤택하지 않다. 뉴욕의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교포 2세인 K 변호사의 지난해 연봉은 12만 달러. 이 가운데 주와 연방 세금으로 약 45%(5만4000달러)를 냈다. 여기에다 집세 2만 달러와 자동차 할부금 등을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K 변호사의 가장 큰 고민은 10만 달러에 이르는 은행 빚. 로스쿨 3년 동안에 진 빚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05년 미국 로스쿨의 학비는 1990년에 비해 197∼267% 올랐다. K 변호사도 로스쿨에 수업료만 매년 3만5000달러씩 냈다. 미국 로스쿨 학생들은 졸업과 함께 8만∼10만 달러의 빚을 안고 새 출발을 한다고 한다.
문제는 좋은 로펌에 취직해 많은 연봉을 받더라도 빚을 갚으려면 5∼10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연봉 5만∼8만 달러를 받는 중소형 로펌의 변호사들은 더 허덕인다. 모두 미국 법률시장의 고비용 구조를 나타내는 것이다.
로스쿨 도입과 시장 개방 등 격변을 앞둔 한국의 법률시장과 법조계에서도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이수형 사회부 차장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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