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은우]한국노총의 신선한 변신

  • 입력 2006년 4월 19일 03시 01분


18일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인 낮 12시 40분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건전한 산업자본은 적극 유치, 론스타 같은 투기자본은 단호한 응징’이란 짤막한 문구였다. 이는 한국노총이 외국인의 직접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KOTRA 공동 협력 약정을 체결한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 메시지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신선했다. 노조라는 단어를 들으면 빨간 띠와 투쟁 구호를 연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노총과 KOTRA의 약정식은 이런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는 않는 일이다.

한국노총은 일반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으로 생각했는지 보도자료에 친절한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고용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건전한 산업자본의 유치를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노조가 공공기관과 손을 잡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외국 자본의 유치에 노력한다’는 모습은 참으로 신선했다. KOTRA가 지난해 300개 외국 투자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영환경 애로 조사에서 한국 투자의 최대 걸림돌이 ‘노사관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가 가장 큰 걸림돌을 스스로 치우겠다고 나섰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약정식에서 “시대가 바뀌었으면 사람도 조직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자신을 ‘싸움꾼’이라고 말한다. 두 차례 옥살이를 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노조활동에서 제일 쉬운 게 투쟁”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누가 피해를 보든 일단 선명성, 투쟁성만 보이면 노조는 열심히 일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이 이날 “무엇이 노동자에게 진정 유리한지를 생각해 보자”고 한 말을 한국 노동계가 되새겨볼 만하다.

한국노총과 KOTRA의 이번 약정이 구체적인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비정규직 법안,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등 굵직한 현안이 노동계의 풍향을 언제든지 바꿔 놓을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노총에서 불고 있는 실용주의 바람에 주목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새로운 시도가 어떤 형태로 결말지어지든 노동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은우 사회부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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